더불어, 스스로 선택한 고독의 시간이기도 하다. 내 속의 것을 꺼내어 써야 하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그 누구도 내 글을 대신 써 줄 순 없다. 만약, 누군가 그것을 대필하여 준다면 글로는 나타나는 현상이 가능하겠으나 그 진정성은 희석된다. 아니, 퇴색된다고 하는 게 맞겠다. 고로, 내 글은 나에게서 나와야 하며, 나 자신이 그것을 써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목적이며 가치다.
그러나 홀로 걷는 길은 때론 힘들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힘이 될 것이다. 너무 많은 사람으로 인하여 상대를 대하는 것 자체가 인생의 피로가 되는 관계도 있겠지만, 같은 방향을 걷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는 상황들이 늘어난다면. 함께 하는 의미는 더욱더 깊어진다.
삶엔 역설이 가득하다.
내 것만 보려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남을 바라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교'란 말은 우리네 사회에서 우리를 성장시키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비교로 인해 서로가 피폐해지는 원흉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는 '남을 보는 것'은 '비교'에 해당하지 않는다. 비교하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해석'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여기에 '투영'이라는 개념을 하나 더 넣어야 한다. 남을 통해 보는 내 모습. 우위의 판단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도록 남을 더 세심히 보려는 노력.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면, 그 글의 결과는 제각각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삶쓰기'라는 가치가 또 한 번 상기된다. 함께 쓰면 이러한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볼 수 있다. 아,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생각할 수가 있구나. 내가 모르는 삶이 여기에 있구나. 생각하지 못했던 표현과 관점이 수두룩 하구나. 나에게 있어 그들의 삶이 특별하듯, 그들에게 있어 내 삶도 평범하지 않을 수가 있겠구나.
고래는 바닷물이 짠 줄 모른다.
강에 있는 물고기도 만나 보고, 육지에 사는 사자도 만나봐야 한다.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존재들과, 다른 물에서 사는 존재들을 만나보면 내 일상이라는 바닷물의 의미는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