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가 달라 보이는 이유.
나는 매일 아침 부활한다.
부활한다는 건 매일 밤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단한 건 아니다.
매일 밤 죽고, 매일 밤 아침에 눈을 뜨는 걸 누구나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르러 우리는 '잠'이라 한다.
그러니까 '잠'엔 '삶'과 '죽음'이 내포되어 있다. 공존하는 그것으로 삶은 지속되고 동시에 우리는 죽음으로 치달리고 있는 것이다.
삶이란 참으로 우습다.
살아가려고 할수록 그것은 죽음으로 향하는 우둔함이다. 우둔한 존재는 오늘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하루만큼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누구의 장난인가. 그 가벼움을 나는 참을 수가 없다.
그러나 삶은 죽음의 진중함으로 한낱 농담에 머무르지 않는다.
언젠간 죽는다는 그 유한성으로 인해, 가벼워 참을 수 없던 그것은 이내 고귀한 것이 된다. 온 인류가 시한부 인생이라 생각해 본다면 그 의미가 더 다가오지 않을까? 아니, 내 삶부터 고찰해야 한다.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은, 어떻게 잘 죽을까라는 사색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은 이미 던져진 주사위다.
태어날 땐 영문을 모른다.
죽음은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은 주사위다.
죽어서 어디로 갈지, 무엇이 될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던져진 주사위가 땅에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을.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한 시 한 초가 급급한 존재에게 잠이라는 특수성이 부여된 건.
아마도 '삶'과 '죽음'의 중첩을 맛보라는 어느 누구의 계략이 아닐까 한다.
다른 말로, 죽음을 연습해 보는 것.
매일 죽음을 떠올릴 것. 고로, 삶은 고귀하다는 것을 깨우칠 것.
아침에 깨어난 자가 어제 잠든 스스로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잠'.
그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음'.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반대로, 영원히 자는 것이 아니라면 삶은 또다시 시작된다.
오늘 아침 눈 떠.
어제 잠든 나를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그러니까 생각보다 의외로 놀랍지 않은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오늘 하루가 달라 보이는 이유.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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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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