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렇게, 오늘을 살면 된다.
삶은 고약한 퀴즈다.
문제를 내고 답을 알아맞히는 그 고유의 룰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답이 없다. 삶엔 답이 없다. 답이라고 믿었던 것도 답이 아닐 수 있게 되고, 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때론 답이 된다. 정답을 갈구하는 우리네에게는 참으로 성가신 무엇이다.
나는 삶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무수한 실패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여태껏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걸 보면, 지나간 실패는 일종의 연습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그러나, 연습이라고 생각한 어느 경험의 실패들은, 삶의 방향을 틀어 놓을 정도로 매섭다. 인생 실전이다라는 말을 차갑게 깨우쳐준다.
그러니, 삶은 연습일까 실전일까.
오늘도 고뇌하는 나에게, 삶은 그저 가벼이 퀴즈를 던진다.
매 순간이 질문이고, 매 순간이 선택의 기로다. 이 순간의 선택이 삶의 큰 줄기를 좌우할 수 있고 또 어떤 인생의 날씨를 가지고 올 지 나는 두렵다.
퀴즈를 내는 존재는 마음이 가볍다.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답이 없다는 답을 알고 있는 여유. 상대방이 말하거나 선택하는 모든 건 답이 아닐 거라는 확신에 미리 웃고 있는 그 사악한 입꼬리가 참으로 얄밉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겠는지 모를 삶의 모순과 역설 앞에 나는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망연자실함 안에 분명 또 다른 역설이 있을 것이다. 답을 찾으려 하는 나를 뒤로 하고, 스스로에게 퀴즈를 내는 존재가 되어보면 어떨까.
퀴즈를 받아 든 자는 어리둥절 하지만.
스스로 문제를 내는 자에겐 답이라는 게 있다.
삶이 던지는 고약한 퀴즈에 휘둘릴 것이냐.
퀴즈에 휘말리기 전에 스스로 질문할 것이냐.
답이 보이지 않으면 질문을 바꾸면 되고.
정답을 모르겠으면 나만의 해답을 찾거나, 나만의 오답노트를 만들면 된다.
삶의 고약함은 무엇에서 오는가.
주머니 속 꼬여버린 이어폰 줄의 엉킴을 나는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는다.
삶은 원래 그러한 것이며.
그 고약하고 사악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퀴즈는 나의 것이 된다.
정답은 나의 것이 된다.
연습이면서도 실전.
실전이면서도 연습.
그저 그렇게.
오늘을 살면 된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소통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