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글쓰기는 '선택', 나를 위한 글쓰기는 '필수'
나를 위한 글쓰기를 먼저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결국 이유는 ‘자아실현’과 ‘경제적 이유’ 그 둘로 귀결된다. 자아실현 에는 나를 찾기 위함부터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까지 모두 포함 돼 있다. 경제적 이유에는 말 그대로 글이 돈이 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욕구가 담겨 있다.
글쓰기의 매력은 이 2가지를 모두 가 능하게 한다는 데 있다.
자아실현을 하면서 수익이 나고, 수익이 나면서 자아실현이 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싶다. 그러나 인생은 언제나 중심 잡기가 관건이다. 남이 보지도 않는 글을 쓰다 보면 회의감이 몰려오고, 무작정 돈이 되는 글쓰기만 좇다가 는 내 목소리를 잃는다. 그 사이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나를 위한 글이고, 어떤 글이 돈이 되는 글일까?
우선 모든 글쓰기의 시작은 나를 위해서다. 쓰자마자 돈이 되는 글쓰기는 없다. 전 인류의 글쓰기는 분명 언어 습득과 일기로 시작됐을 것이다. 멀리 가지 않고도 우리 스스로를 보면 알 수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는 글쓰기는 돈을 위한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같은 언어권에 속한 무리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글을 쓰고 말을 배우는 게 우선이다.
그 이후에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기록하고 표현하려 애쓴다. 본능적으로 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에 대해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일기다. 형태야 어떻든 간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끄적여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내 글쓰기의 시작도 희미해지는 나를 붙잡기 위함이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소비적인 삶에서 나는 스스로를 구원하고 싶었다. 당장 나를 끄집어내지 않으면 그 어떤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 가 영영 나오지 못할 거란 두려움. 뭐라도 당장 그에 반하는 행 위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 결국 마음의 펜을 든 것이다. 재밌는 건 이렇게 시작한 글이 돈이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살고자 썼는데, 그게 하나둘 모이더니 힘을 발휘한다.
모인 글들이 책이 되고, 책은 나를 알린다. 개인 브랜딩이 구축되고 직장인이라는 페르소나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페르소 나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깨우쳐준다. 책은 인세를 정기적으로 가져다준다. 여기저기서 기고나 강연 요청의 기회가 온다. 더불어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던 나의 글쓰기와 출판 노하우는 강의 콘텐츠가 됐다. 오프라인과 VOD 강의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해 설명하며 수입을 얻는다. 책과 VOD 강의 등은 내가 자고 있을 때도 수입을 얻게 해주는 좋은 파이프라인이 되고 있다. 그러니까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도움이 된다면, 그러한 글이 쌓이고 쌓여 중력을 만들어낸다면 얼마든지 내 이야기도 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돈이 되는 글쓰기는 ‘선택’,
나를 위한 글쓰기는 ‘필수’
그러나 ‘돈’이라는 말 때문에 생기는 맹목적인 쏠림을 주의해야 한다.
돈이 되는 일에는 많은 것들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글쓰기를 알려준다는 수많은 정보를 보면 일견 이해가 되면서도 어느 정도의 거부감이 든다. 내 글은 나로부터다. 내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개입된 무엇들로 인해 희석돼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누군가 나에게 ‘나를 위한 글쓰기’와 ‘돈이 되는 글쓰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전자를 택할 것이다.
나에게 돈이 되는 글쓰기는 ‘선택’이지만, 나를 위한 글쓰기는 ‘필수’다.
글로 숨을 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바라는 건 ‘중심 잡기’다. 그래서 나는 돈이라는 말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돈이란 단어를 가치로 치환한다. ‘돈을 벌어야지’가 아 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지’라는 생각. 자본주의 사회는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기 때문에 두 단어가 비슷해 보일 수 있지 만 어디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살펴보면, ‘책 쓰기 속성’ 강의로 수천 만 원을 받아 가는 일부 과정이 있다.
자기 목소리는 없이 오로 지 책을 내고 인생을 바꾸라 강조한다. 책 한 권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준다 유혹하고, 제대로 팔리지 않을 책을 만들어 그저 순간을 위로한다. 그 책 안에는 제 목소리는 없고, 온갖 인용구만 난무한다. 상대방에게 가치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돈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그 과정이 누군 가에게는 가치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 한 권 낸다고 삶이 바뀌지 않는다. 삶이 바뀌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싶다. 무엇이 먼저인 지, 어디가 중심인지를 잊지 말자고 나 스스로와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다. 내 글과 책, 그리고 글쓰기 과정이 가치 있기를 바란 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더 글을 쓸 수 있도록, 용기 내 글의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중심을 잡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
중심 잡기는 쉽지 않다.
때로는 한쪽으로 쏠려봐야 다른 쪽으로 내달려 중심을 잡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이나 ‘돈’, 그 어느 한쪽으로 매몰되지 않으려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지속해 질문한다.
1. 나부터 쓰고 있는가? 나는 쓰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시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진정성 없이는 그 어떤 가치도 성립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2. 상대방의 어려움을 이해하려 하는가? 내가 무언가를 알려주고자 하기 전에, 상대방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3. 마음을 향하는가? 머리를 깨치는 것은 단기적인 도움이다. 마음을 동하게 해야 한다. 아무리 글쓰기가 중요하다 말해도,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 게 해줘야 일상을 달리 보는 글쓰기의 기적이 일어난다.
지금은 돈이 되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시대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불안한 직장 이후의 삶과, 월급으로는 만족되지 않는 현실에 조급함이 몰려온다. 나에게 글을 써서 얼마 벌었냐고 서슴없이 물어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대답을 얼버무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는지, 가치를 선사했는지, 상대의 어려운 마음을 헤아렸는지 그리고 나는 내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는지를 말이다.
만약 돈이 되는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나를 위한 글쓰기를 먼 저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바로 서야, 내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어야 남에게도 가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돈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한 글쓰기를 먼저 시작하고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돈이 아닌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머리가 아닌 마음을 향해야 한다.
그럴 때 글쓰기는 ‘선하고 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만이 아닌, 나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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