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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대를 잡은 모두는 조급하다.

<스테르담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by 스테르담

무척이나 어려서 나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때였다.

아마도 대여섯 살이었던 걸로 추정된다. 브라운관 TV에 나오는 만화는 디즈니였다. 당시 어린아이들에게 디즈니는 꿈의 프로그램이었다. TV에 디즈니 캐릭터가 나오면, 바짝 자세를 바로 고치고 그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흐트러짐 없이 만화를 완주했다. 아마도 그땐, 그 시절의 뽀로로가 디즈니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어린 나이였고, 운전을 모르던 나이. 어느 한 캐릭터가 차에 올라타기 전 아주 상냥하고 로맨틱한 면모를 뽐냈다. 꽃 향기를 막고, 서글서글한 모습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끝은? 그림에서 보듯, 그는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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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도 이와 같다. 운전을 하지 못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이러한 속성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이것이 우리네 본성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지금의 나도 다르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운전을 하며 나는 기분이 많이 상하고 욕을 하거나 흥분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황을 많이 맞이한다.


이 모든 건 조급함에서 온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 왜 없을까? 사실,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다. 말 그대로 이로운 기계라는 뜻이다. 자동차의 근본 목적은 '효율성'에 있다. 빨리, 편하게 가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 목적에 부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화낼 필요가 없다.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빠르고, 뛰는 것보다 편하다.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화낼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초점을 맞추는 건 남들과의 비교다.

저 차가 나보다 빨리 가고, 저 차 때문에 내 앞길이 막힌다는 생각은 결국 조급함을 자아낸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각 개인이, 타인이 자동차라고 비유해 본다면 삶은 결국 도로 위에서 만나는 자동차들과의 아웅다웅함이다.


'운명(運命)'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목숨을 운전한단 뜻이다. 운전할 때의 '운'자도 같은 말이다. 우리 모두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우리 명줄이 오간다. 내 운명은,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운전하여 이루어가는 것이다.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기로 한다.

손해 운전을 하기로 한다. 손실로 인한 상처보다는, 피해는 보지 않되 아예 처음부터 손해 보자는 마음으로 운전을 해야지. 그러자 삶과 운전이 덜 조급해진다. 조급해져서 피해를 보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피해보다는 손해를 보는 편이 낫다. 손해보지 않으려 발버둥 치려다 더 많은 걸 잃고 나서야 나는 이것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운전대를 쥐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명'을 '운전'하고 있다.

운전하는 모든 존재는 조급하다.

이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려야, 덜 조급할 수 있다.

그래야 안전 운전, 방어 운전을 할 수 있다.


잊지 말자.

궁극적인 운전의 목적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다.


운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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