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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1. 2024

손해 운전을 하기로 했다

<스테르담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심하진 않지만 운전을 조금은 과격하게 하는 편이다.

다른 차에 피해를 주는 과격함이라기보단 조급함의 그것이다. 앞차와의 간격이 좀 멀찌감한걸 참기가 어렵다. 어느 정도 간격을 줄여야 마음이 놓인다. 이유는 두 가지다. 간격을 벌려 놓으면 여지없이 다른 차가 파고든다. 또 하난 여백의 미(?)를 감당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운전대를 잡은 모두는 조급해지므로.


왜 그럴까를 생각해 봤다.

왜 이리 조급할까. 조바심이 날까. 마음이 옹졸해질까. 운전을 하면 흥분하기 일쑤고, 감정과 욕은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유. 손실 회피 경향이라는 결론이다. 사람들은 손해 보기 싫어하는 동물이다. 100원을 주웠을 때보다, 100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이 2배라는 걸 인지 심리학자들은 수치로 증명해 냈다.


갑자기 내 앞에 끼어들어 머뭇머뭇하던 차가 찰나의 순간 신호를 건너간다.

그 찰나의 순간으로 나는 신호에 걸리고 만다. 그 차가 아니었다면, 그 신호는 오롯이 내 것이었다. 브레이크를 밟을 일도 없고 가던 속도로 가면 그만인데. 아, 손해 봤다는 생각이 몰려오며 가슴이 쿵쾅거리고 뒷목이 뻐근하다. 경적은 울려봐야 이미 사거리를 건너 쌩 하고 달려가는 차엔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도로 위에선 매 순간이 손해 본다는 생각이다.

화가 많이 나는 이유다. 갑자기 끼어드는 차, 앞이나 옆에서 머뭇거리는 차, 내 차 뒤를 박아버리려는 듯이 바짝 붙어 달려오는 차, 신호에 걸리면 왠지 손해 보는 것 같고 시간을 버리는 것만 같고...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利器)다. '이기'라서 삶이 더 편해졌을까? 몸은 좀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불편해졌다. 매 순간 분노가 치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손해 운전을 하기로 했다.

차 시동을 걸며 속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 

오늘도 손해 보는 운전을 하자.



앞 옆 차가 끼어들까 말까... 조마조마하지 않다.

그냥 손해 보기로 한다. 역시나 깜빡이도 켜지 않고 들어온다. 예전 같으면 피가 거꾸로 솟으며, 정의의(?)의 경적을 울리며 분노했겠지만... 나는 안다. 경적은 내가 듣는 것이고, 분노는 남을 보며 소리치며 정작 그 독은 내가 먹게 된다는 걸. 손해 보기로 한 마음이 나를 지키다. 앞에서 머뭇머뭇거리던 차 때문에 신호에 걸렸다. 손해 보기로 했으니, 그리 화나지도 않는다. 유독 내 차선만 막히는 것 같다. 예전이라면 요리조리 차선을 바꿨겠지만, 손해 보기로 했으니 그냥 쭉 한 차선으로 간다. 


손해 운전을 하니 편해지는 건 내 마음이다.

그렇다면 이게 손해일까? 아니, 오히려 이득이다.


삶도 그러하지 않은가.

무언가 손해 보려 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악착같았을 때, 나는 잃는 것이 더 많았다. 인생, 사람과의 관계, 돈... 손해보지 않으려 할수록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해 보자고 마음먹었을 때 나에게로 행복은 더 많은 빈도로 찾아왔다.




문명의 이기에 휘둘리지 않는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는다. 문명의 이기를 드디어 제대로 잘 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니 손해가 아니라 이득이 맞다.


도로 위엔 나보다 빨리 가는 미친놈과, 나보다 느리게 가는 멍청이만 있을 뿐이다.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진다. 그저 각자의 길로 가고 있는 차들이 보일 뿐. 남을 해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의도가 없다. 혹시 내게 피해를 주는 차가 있더라도, 나를 특정한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손해 보며 여유 있게 운전한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나는 위협이나 방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손해 본다고 생각하자.

오히려 이득을 보는 건 바로 나 자신이다. 더불어, 삭막한 도로 위 작은 양보와 배려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씨앗을 남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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