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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2. 2023

3개월 만에 스페인어를 마스터한 사연

Muchas Gracias!!!

스페인어를 쓰게 될 줄이야


나의 무지(無知)를 고백하자면.

갑작스러운 멕시코 발령을 받기 전까지, 나는 멕시코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맡았던 시장은 한국, 중동, 아프리카, 유럽, 북미였다. 그럼에도 중남미 많은 국가가 스페인어를 쓴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사실 그것은 '무지'라기 보단 '무관심'이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또한, 내가 담당했던 지역이나 국가에선 업무상 대부분 영어를 사용했던 것도 한 몫했다. 스페인을 방문했을 때도, 사무실이나 바이어를 만났을 땐 모두 영어로 소통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네덜란드야 말해 뭐 할까. 동네 할아버지도 영어를 술술 말하는 곳이었으니.


변명이 좀 길었는데, 이곳 멕시코는 이야기가 달랐다.

우리 회사는 중남미로 지역 언어가 되는 사람을 보내는 관례가 있다. 그래서인지 중남미 법인엔 어느 어느 학교, 스페인어 또는 포르투갈어 전공자가 대부분 포진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무실에선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가 쓰인다. 스페인어라곤 '우노', '도스', '뜨레스'만 알고 있던 나에게, 두 달 뒤 갑자기 멕시코로 가라는 발령이 났을 때 그때의 충격과 공포가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제 나는 스페인어를 마스터했다.

마스터의 기준은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내 기준에서의 마스터는 회의 석상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80% 이상 듣고, 내가 원하는 바를 말할 줄 아는 것. 바이어 상담에서도 웬만한 소통은 스페인어로 진행하고 식당에서 막힘 없이 원하는 음식과 음료를 시킬 수 있는 것. 농담으로 상대방을 웃게 할 수 있는 것. 조금 더 하여 관공서나 개인 업무를 볼 때 몸짓을 조금 동원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걸 말한다. 한 마디로, 조금의 어려움은 있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을 나는 마스터라고 명한다.


부임 후 첫 회의석상을 기억한다.

인사를 위해 번역기로 깨알 같이 적어 간 대략 15개 정도의 스페인어 문장. 분명 며칠간 꼬박 외워갔는데,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부끄럽게도 나는 노트를 들고는 인사를 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인사를 '읽었다.' 그 이후에 이어진 회의에서, 나는 우주 한복판에 버려진 먼지가 아닐까란 자괴감이 들었다. 대답이야 급하게 영어로 하면 되겠지만, 오가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제발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간절한 기도를 할 뿐이었다.


내가 스페인어를 말하는 사람들 속에 속할 줄이야.

순간, 두려움과 함께 그 어떤 오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스페인어를 마스터한 비결


사람은 '살아남아야겠다'라는 생존 본능이 발동할 때,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벼랑 끝에 서면 정신이 명료해지는 이치다. 내가 스페인어를 쓰는 그 상황이라는 우주를 바꿀 수 없으니, 결국 변해야 하는 건 나였다.


어떻게 해야 스페인어를 빠른 시간 안에 마스터할 수 있(었)을까?


첫째, 목적을 분명히 한다.


어떻게보다 중요한 것이 '왜'다.

'왜'를 무시하고 '어떻게'에만 치중하면, 결승선을 반대로 아주 잘 달리는 마라톤 선수가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네는 왜인지 모르고 어떻게에 집착하여 무언가를 빨리 끝내려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돌아보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고 화들짝 할 때가 부지기수다. 


물론, 스페인어를 배우는 목적은 타의적인 세팅 값이었다.

그러니 더 분명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업무를 하려면, 성과를 하려면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분명한 목적이 있을까.


나는 이 목적의식을 꽉 붙잡기로 했다.

3개월 후, 원하는 바를 말하고 스페인어로 상대방을 웃게 할 거란 생생한 생각을 하면서.


둘째, 기초를 다진다.


기초를 다질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발령 후 부임까지 남은 시간은 약 두 달. 급하게 온라인 어학코스를 신청했다. 퇴근 후엔 온라인 강의에 매달렸다.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짝 또는 잠깐 이해가 되는 듯했지만, 역시나 돌아서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실제로, 멕시코에 처음 왔을 때 내가 들었던 온라인 강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고, 그 무엇도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다진 기초는 조금씩 말문이 트이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조금씩 듣고, 조금씩 말할 줄 알게 되자 쌓았던 기초의 지식들이 십분 활용되었다.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그때가, 초석을 다지는 그때가 정말 너무나 당연하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란 걸 절실히 느낀 때였다.


(감사합니다, 예씨 선생님)


셋째, 친구를 만든다.


가장 정성을 들인 일이다.

또 가장 간절히 요청한 건이다. 온라인 영상 강의로는, 단어를 달달 외우는 것으론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야, 배우고 외우는 말이 아닌 오가는 말을 해야 실력이 늘 거란 판단이 들었다.


수소문 끝에, 주말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회사 밖)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처음엔 영어와 스페인어를 사용했는데, 점차 영어 사용량이 줄어들었다.


친구 집도 방문하고, 그 친구의 지인들과 피에스타에 참석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문화와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혹, 시간이 맞지 않아 만나지 못하거나 내가 출장 중일 땐 전화 또는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다. 대면, 전화, 메시지 등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니 자연스러운 커뮤니케이션이 완성되어 갔다.


간절함으로 이루어낸 그 인연이 나는 참 고맙다.


넷째, 귀를 뚫는다.


당연한 말이다.

영어 학원에서도 지겹도록 말하는 요소다. 정말 귀가 뚫릴 정도로. 그래서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차를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은 약 20분 정도.

나는 항상 차에서 현지 라디오를 듣는다. 멕시코 시티는 멕시코 내에서도 라디오 청취율이 1위인 곳이다. 그만큼 교통 체증이 심하다. 출근길은 물론, 차에 있는 시간은 언제나 스페인어 라디오 리스닝 시간. 절반 정도를 알아들을까 말까 하지만, 대략적인 감은 오는 지경이 되었다.


이 외에도, 스페인어 표현 문장 동영상을 계속 틀고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했다.

아직 뚫린 정도라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듣고 대답은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으니 귀에 약간의 틈은 생긴 걸로!


다섯째, 개떡 같이 말해도 상대가 찰떡같이 알아들을 거란 용기를 가진다.


나는 정말이지 스페인어를 술술 말한다.

술술 말한다는 이야기는 자신 있게 내뱉는다는 말이다. 이 자신감의 근원은 나에게 있지 않다. 상대방에게 있다. 내 말을 알아서 잘 들어줄 거란 (상대방에 대한) 자신감.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어눌한 말을 하는 외국인의 모든 말을 받아 준다.

어눌하다고 뭐라 말할 사람은 없다. 오히려 기특하게 여긴다. 난 바이어와 상담할 때도, 그들의 문화와 말을 존중한다는 표현으로 어눌해도 양해를 해달라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흔쾌히 다들 허락해 주고, 더 반짝반짝한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듣는다. (제 스페인어는 매우 수준이 낮아요. 여러분의 한국어처럼요...라고 말하면 모두가 웃으며 훈훈하게 회의가 시작된다.)




이 외에도, 나는 어린이와 같은 눈으로 모르는 단어를 바라본다.

화장실 벽, 간판, 안내판, 상표, 광고 문구 등. 그때마다 휴대폰을 들어 단어를 검색한다. 참고로 나는 번역 앱 사용 시 사진 검색은 하지 않는다. 순간의 궁금증만 해결될 뿐, 기억에 남지 않아서다. 그래서 나는 글자 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꾹꾹 눌러가며 그 의미를 찾는다.


좀 더 자세히 주위를 바라보니, 언어 외에 것들도 눈에 더 잘 들어온다.

그네들의 문화, 분위기, 감정, 표현, 양식, 건물, 음식과 전반적인 생활 정서까지.


멕시코 발령은 나에게 두려운 선고와 같았지만, 이제 나에게 그것은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지나고 나면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우주의 먼지가 되었던 그 기억을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걸 보면, 과연 그 말이 맞다는 생각이다.


갑자기, 어설프게 말해도 다 알아서 들어주고 호응해 주는 내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Muchas Gracias a To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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