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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5. 2023

어머니는 냉장고 문을 열지 말라고 하셨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생각하게 되는 것

각 집마다 중요시하는 예절이나 행동이 있을 것이다.

베개를 세우지 말라거나, 문지방을 발로 밟지 말라거나, 우산을 집 안에서 펴지 말라거나 하는 등의 것들 말이다. 미신이나 신념, 징크스와 예절 그 어느 사이를 오가는 관념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우리네 삶과 동고동락한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선명한 건, 남의 집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지 말라는 것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를 어머니는 예절로 채워주셨다. 어디 가서 아버지가 없어 버릇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니까. 어려서부터 나는 그 뜻을 헤아렸다. 남의 집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지 말라는 말씀을 어머니가 하셨을 때, 그 이유를 묻지 않았던 이유다.


냉장고 안엔 그 집의 먹거리가 들어 있다.

요즘은 밀키트나 가공 음식들이 즐비하지만, 내 어렸을 적 냉장고엔 음식이 되기 전 날것 그대로의 재료들이 가득했다. 그 재료들은 어떤 음식이 될까. 냉장고 속 재료들은 어머니 손을 거쳐 맛있는 집밥이 되곤 했다. 어머니 손은 큼지막했다. 깍두기도, 김치도. 동그랑땡을 부치시거나 김밥을 돌돌 말으실 때도. 입을 크게 벌려야 할 만큼 음식의 크기가 컸다. 나는 그게 좋았다. 입안 가득 무언가를 넣으면, 마음속 허전함이 조금은 채워지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항상 나가 계셨던 어머니와, 밖으로 방황하던 누나. 어린 나이에 홀로였던 나는 어머니의 큼지막한 음식들에 위로를 얻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게.

만약 낯선 누군가 우리 집에 불쑥 찾아와 냉장고를 연다면, 왠지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마음의 위로를 얻을 음식 재료들을, 어머니의 손이 닿기도 전에 다른 누군가 그것들을 헤집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더 그렇다.


잠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어 본다.

갖가지 음식과 재료들이 어우러져있다. 아이들은 이 음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가 해주는 음식의 의미를 헤아리고 있을까. 그건 그렇고, 어디 가서 남의 집 냉장고 문을 함부로 열거나 하진 않겠지? 아이들을 불러다가 남의 집에 갔을 땐, 함부로 그 집 냉장고 문을 열지 말라고 말해줬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해주신 것처럼. 아빠가 있고 없고를 떠나, 기본적인 예의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하므로.


아, 그리고 베개를 세우지 말라고.

문지방을 발로 밟지 말라고.

우산을 집에서 펴지 말라고.


이것들도 다 이야기해 줘야겠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느샌가 어른이 되어, 베개와 문지방 그리고 우산을 보며 나를 한번 더 생각하겠지.


냉장고 문을 열며.

내 어머니를 한번 더 생각하는 지금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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