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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7. 2023

인공지능(AI)으로는 쓸 수 없는 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세상이 격변하고 있다.

말 그대로 격변이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기관과 기계의 발명으로 사람의 힘만이 아닌 기계의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2차는 전기를 활용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3차 산업 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폰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해진 정보화 시대다. 1~3차 혁명은 산업화를 말하고, 4차 산업은 디지털 혁명을 의미한다.


4차 혁명은 기존 1~3차 혁명에 비해 무언가 모호했다.

정보가 난무해지는 그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라는 디바이스가 4차 혁명을 더 잘 나타내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정보화 혁명이라고 하지만 결국 하드웨어만큼 데이터나 소프트웨어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생기는 괴리다.


그런데, 최근 AI 툴이 급진적으로 발전되면서 '정보화 혁명'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챗GPT, 빙채팅 검색, 노션 AI 그리고 4차 혁명의 진짜 신호탄이 될 거라 평가받는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까지. 대신 그림 그려주고, 대신 글 써 주고, 대신 일해주는 AI의 탄생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무언가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이야기는 시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시대의 변화는 언제나 경제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시대가 변화는 방향은 언제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의 그것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기원은 대략 2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문명의 시작을 보면 그 역사는 약 6천 년 정도로 짧아진다. 자본주의는 18세기말에 시작되었으니, 인류 시계로 따져본다면 지난 120여 년은 전 역사를 통틀어 꽤나 압축적이고 급진적인 변화의 순간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까지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즉,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길이 아닌 곳을 가고 있으며,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떠 맞이하는 아침은 이전엔 없던 새로운 세상이라는 이야기다.


챗GPT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 로스쿨 시험에 응시하여 C+학점을 받아 합격했다.

더불어, 의사면허 시험에도 응시하여 생화학, 진단추론, 생명윤리 3개 과목을 Pass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사람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란 의문이 떠오른다. 인공지능 툴을 이용하여 에세이를 써 달라고 하면, 단 몇 초만에 뚝딱 써주는 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고유 영역이 있을 거라 믿는다.

AI는 그리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나'라는 사람 외의 존재를 '타인'이라 규정하면 이해가 바를 것이다. 타인은 나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 나 인척 글을 쓸 수가 있다는 말이다. 타인은 나보다 글 쓰기 실력이 월등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내가 아무리 인터넷 세계에 많은 정보를 흘리고 다닌다 한들, 그 정보는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학은 '나'라는 마음의 호수에 '왜'라는 돌을 던지는 것이다. 그것에서 일어나는 물결과 그 물결이 야기하는 마음의 요동은 타인이 범접할 수 없는 'Originality'다. 


나는 이 'Originlaity'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온라인상의 쿠키나 내 디지털 족적을 아무리 털고 털어봐야, 그건 내가 아니며 나의 무엇이 묻어 있다 한들 그것은 과거의 나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보통 경제적 가치와 결합하여 무언가를 판매하고 어떤 커뮤니티에 귀속이 되게 하려는 용도로 쓰인다. 그 용도로 쓰인다는 말은, 그렇게 설계되었단 뜻이고 이것은 우리 각자의 'Originality'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 'Originality'는 경제적 가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정 고유한 '자아'란 개념과 밀접해 있고, '자아'는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으므로 AI 또는 타인이 규정하는 '나'는 규정함과 동시에 변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AI에게 물었다.

AI로 쓸 수 없는 글이 무엇이냐고.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쁜지를 말이다.


아래 노션 AI의 답은 이렇다.

컴퓨터가 자연어를 생성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AI를 이용해 글쓰기를 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AI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불필요한 정보 포함 가능성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을 생성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 감성, 창의성 부족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성된 글이므로, 감성적인 요소나 창의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지루하고 반응이 없는 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인간적인 표현 미흡 AI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글을 생성하므로, 자연스러운 표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항상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간적인 감성과 창의성이 필요한 글쓰기 분야에서는 AI를 이용한 글쓰기는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AI조차도 자신이 쓸 수 없는 글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다 믿지 않는다. 지금의 '나 자신'이 원래의 내가 아닌 것처럼, 인공지능도 지금 이 대답을 한 이후로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정보를 수집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상상하던, '자아'와 그들만의 'Originality'를 탑재한 인공지능이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자 하는 'Originality'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립이 아니라, '나'와 '타인'에 대한 'Originality'인 것이다.


인공지능이 쓸 수 없는 글이 있을까란 질문은, 타인이 쓸 수 없는 내 글은 무엇인가로 치환되어야 한다.

그러면 답이 보인다.


AI가 써 줄 수 없는 글.

타인이 써줄 수 없는 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


그게 무엇일지는 우리 안에 답이 있다.

AI의 발전에 경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 어떤 지능이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밖이 소란할수록, 바라봐야 하는 것은 우리 내부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AI는 경제적 가치를 우선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것으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에 대해선 적극 천성한다. 그러나, 내 안의 'Originality'를 발견하지 않은 채 AI에 기대게 되면 나의 그것은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소멸이 아닌 타인으로의 흡수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아닌 시대의 조류에 따라 핫해지는 무엇이 될 것이다.


고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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