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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6. 2023

쓰는 만큼 보인다

쓰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허(虛)가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것'에 대한 말들이다.

유명한 말이지만, 그래서 곱씹지 못한다.


우리네는 당연한 걸 당연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당연한 말인가? 그렇다면 당연한 것에 걸려든 결과다. 삶은 당연한 걸, 당연하게 강요한다. 우리는 그것에 쉽게 걸려드는 것이고. 당연한 것들은 그저 삼켜진다. 달콤한 맛도 없고, 고기처럼 씹을만한 식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을 입에 오래 두고 씹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아, 밥이 이렇게 달고 맛있었구나. 밥은 너무나 당연한 음식이지만,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은 물론 다른 반찬과 조화를 이루어 입을 달래주는 재주가 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 마음에 혼란스러운 건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지식의 개념 밖에서 논해야 한다. '아는 것'은 '지식'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지식이라 칭하는 순간 아는 것에서부터 오는 오만함에 이르러 '지식의 저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나를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나타난다. 그러니까, 나 자신은 '아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알아가는 것'이라 표현하는 게 옳다.


그렇다면 '아는 것', '알아가는 것'은 나에게 힘이 되는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알지 못하는 것보단, 아는 것이 더 낫다. 무엇을 모르는지를 안다면, 그것 만큼 또 값진 것이 없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접고, 그럼에도 알아가려는 마음을 내세우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우리에게 있어, 우리 자신은 매우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눈 뜨고, 숨 쉬고 있으면 마치 나 자신이 나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 그런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는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지금 이 순간의 나 또한 분열되어 있다. 말 그대로 제각각이다. 하나로 통일되지 않는 나를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계약 관계에 있는 사람은 계약서를 작성한다.

어떤 상황이나 마음이 변하였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다. 변질된 무엇에게 계약서를 들이밀면 할 말이 없다. 계약서엔 명명백백하게 약속된 것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이 나라면?

그렇다면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즉,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해야 한다. 기록을 남은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글쓰기는 나와 쓰는 계약서다.

계약서엔 많은 조항이 있다. 변질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빽빽하고 알 수 없는 조항들은 어느새 체결되고 남겨진다. 계약서를 자세히 봐야 하는 이유다. 나도 모르게 쓰인 많은 것들은, 지난날과 미래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너 자신을 써라.

쓰는 것이 힘이다.

쓰는 만큼 보인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난 후 깨달은 것이다.

쓰지 않으면 나를 알 수 없다. 나를 알지 못하면 힘을 얻지 못한다. 나를 써 나아가면, 힘을 얻을 수 있다. 글쓰기 후에 변화된 내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밝고 역동적이다. 나와 적성된 지난날의 계약서들이, 내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명명백백하게 알려 준다.


쓰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허(虛)가 아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 지고.

평범한 것들이 특별해진다.


그 사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순간과 날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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