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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07. 2016

직장 내 존중의 힘

사람이 우선이다. 그다음도 사람이다.

오랜만에 한국 출장이었다.

3년째 주재하고 있는 이 곳에서 그래도 1년에 3~4번은 꾸준히 한국 출장이 있어왔다. 그리고 이번 출장은 올해의 첫 한국 출장. 오랜만에 본사 사무실을 방문해서 내가 일했던 자리와 거기에 앉아 있는 낯선 후배들을 만나 인사하고 또 반가운 사람들도 안부를 물었다. 시간이 그리 많이 흐른 것 같진 않았는데 모르는 얼굴들이 시간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늘어난 느낌이다.


나의 사람들과 즐거운 저녁 시간.

보통 한국 출장을 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내가 주재하는 국가를 담당해주는 각 제품별 담당자에게 저녁을 사는 것이다. 그동안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가끔의 출장으로 함께 업무를 하면서 누구보다 끈끈하게 연결되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이들이다. 나의 그들에 대한 의존도, 그리고 그 친구들의 나를 향한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같은 배를 탔다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함께 하고 있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이 친구들이 나에겐 자산이며 힘이다. 사람을 소중히 하는 것은 내 업무 원칙의 무조건 첫 번째다. 그래서 난 내 담당자들이 좋다. 또 그래서 한국을 방문하면 맛있는 밥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예상치 못한 후배의 방문.

그 날은 내가 초대한 사람 외에 한 명이 더 참석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그 친구의 등장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매우 친한 후배였는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반가움이 과하니 이름이 기억 안 나는 요상한 상황은 술 때문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반가움에 와락 안은 채로 지난날의 안부는 서로에게 언어 이상으로 전해졌다. 자연스레 함께 일했던 4~5년 전으로 돌아가 회포를 풀었다. 미처 초대하지 못했음에도 와준 고마움과 반가움에 어리둥절함은 간직한 채로.


그리고 예상치 못한 후배의 한 마디.

그 후배를 만난 건 내가 년 전 미국 시장을 담당할 때였다. 미국으로 출장을 자주 다니던 시절, 그 친구는 미국 법인의 직원이었고 내 카운터 파트너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 친구가 지금은 한국 본사로 일정 기간 동안 역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거였다. 그리곤 내가 보낸 담당자들의 초대 메일이 어딘가를 돌다 그 후배가 우연히 보고 오게 된 것. 많은 어려움이 있던 그 시절이었지만 돌아보니 참 유쾌했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하는 이야기들은 당시엔 꽤나 심각했던 일인데, 도무지 그 심각함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그립고 그저 그리운 추억. 갑자기 그 후배가 내 팔을 이끌고 나가서 이야기를 하잔다.


"형, 형이랑 일할 때가 정말 재밌었어. 나 그때 많은 걸 형한테 배웠고, 돌이켜보니 참 형은 형의 역할을 그 이상으로 했던 것 같아."


"오글 거리게 무슨 소리냐, 다 네가 도와준 덕분이지."


술에 취했는지, 반가움에 취했는지 그 후배는 내 칭찬을 연신해댔다. 듣는 당사자인 내가 오글 거릴 정도였으니,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참 다행이라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형, 내가 형을 좋아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어."


"그게 뭐냐?"


"형은 날 무시하지 않았어. 업무가 바뀌어 잘 모르던 때였는데 많은 텃세와 무시를 당했었거든. 근데 형은 그러지 않았어! 무시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내 기억에 그때는 나 또한 담당지역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내가 누굴 무시하거나 낮게 볼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더불어, 내가 마음먹고 무시하지 않았음을 기억할리도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는 그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곤 나의 팬이 되었고, 내가 미국 담당자를 떠나 유럽 주재원으로 나온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친구는 사람들에게 내 칭찬을 하고 다녔더랬다.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된다.

문득, 입사 5년 차에 겪었던 텃세가 생각났다. 국내 영업에서 해외 마케팅으로 옮겼을 그때 받은 텃세는 언제나 생생하게 떠오른다. 업무도 잘 모르고, 또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흙수저 + 어학연수 한 번 해본 적 없는 토종 한국인인 나는 텃세의 재물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는지 모른다. 대놓고 텃세를 부리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 했는데, 나에겐 정말 그런 사람이 있었고 그런 사건이 있었다. 지금에야 그 사람과도 잘 지내고 또 그 사람은 아직도 주재 경험을 못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많은 것을 배웠다. 먼저 온 자가 나중 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 될 수도 있다는 것. 세상은 더욱더 빨리 바뀌었고 이러한 일은 예전보단 더 쉽게 일어난다. 진급을 하거나 역할이 바뀌어 부하 직원이 상사가 되는 경우도 있고, 상사가 반대로 부하 직원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곳이 되어버린 곳이 지금의 직장이다. 또한 어떤 사람을 언제 어디에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난 사람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텃세를 부리기보단 모르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려 수 백번이고 가르쳐주었다. 내가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아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나중에 어떻게 만날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같은 월급쟁이로서 서로 힘겹게 사는데 굳이 서로를 힘겹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아니,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조금씩 바꾸어나갈 수 있으니까.


사람이 자산이다.

나의 업무 철칙은 첫째도 사람이요, 둘째도 사람이다. 이는 '인맥'에 국한된 말이 아니다. 인맥관리라면 인위적인 MSG는 누구라도 느끼게 마련이다. 진심으로 대하고, 무시하지 않고 어려움을 헤아리고 함께 신명 나게 일하다 보면 서로에게 자산이 되는 그러한 관계가 나는 참 좋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도 이러한 것들을 선배들에게 받아 내리사랑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담당자가 출장을 오면 아무리 바빠도 극진히 모시고 또 어디 한 곳이라도 구경시켜주려 애쓴다. 이러한 진심들이 모여 이심전심이 되고 또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성과도 난다는 말이다.




아직도 그 후배는 어디선가 내 칭찬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를 욕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대단한 걸 해주지 않았음에도 진심으로 나를 아끼고 좋게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사람을 우선으로 하는 나의 업무 방식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곤 더욱더 확신한다.


뭐 하나 해준 것이 없는데 그러한 좋은 후배를 얻었다는 건, 그저 내가 인복이 많다고 할 수밖에.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사람 우선의 업무 방식이 좀 더 빛을 발해 후배들을 통해 내리사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선배들에게 받은 그것처럼. 문득 그 옛날, 바쁜 와중에도 출장자인 나를 이끌어 여기저기 안내를 해주던 선배들의 사랑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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