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성을 말하는 사람을 당할 순 없습니다.
꼰대란 말을 잘 아실 겁니다.
원뜻은 젊은 세대가 선생, 아버지, 늙은이를 지칭하는 은어로 시작을 했습니다. 이것이 '기성세대'를 아우르는 말로 발전이 되었는데요. 기성세대는 대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는 습성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꼰대는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 꼰대질을 당하는 것에 대해 매우 민감해하고, 자신은 절대 꼰대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우리네 단면을 보면 꼰대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적이고도 개인적인 현상인 것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경험'과 '일반화'가 조합이 되면, 아주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조합은 '방향성'을 만들어냅니다. 방향성을 말하는 사람을 당할 순 없습니다.
'조심해, 그러다 언젠가 감기 걸린다.'란 말은 방향성을 말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한 번쯤은 감기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왜 뜬금없이 감기 이야기냐고요? 정말 세상에 이런 꼰대가 또 있을까 싶었던 상사의 말을 하나하나 되새기고 분석해 보니, 이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아낸 겁니다. 좀 억울했던 건, 언젠가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그 상사의 말 그대로 염려한 것들이 발생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갓난아이가 앞을 향해 기어가고 있습니다.
앞엔 웅덩이가 있습니다. 그걸 보는 어른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까요? 알아듣지도 못하는 아이지만 우선 소리라도 쳐 알려줄 겁니다. 아니면 직접 물리적으로 그 방향을 틀기도 할 거고요. 웅덩이에 빠졌다면 후회를 하겠지만, 그 웅덩이에 빠지지 않은 아이는 왜 그토록 어른들이 자신에게 소리치고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지 의아해할 겁니다. 아이가 웅덩이에 빠져 보는 건 아주 중요한 경험입니다. 빠져봐야, 몸소 느껴봐야 그 위험성을 알 테니까요. 기성세대들은 웅덩이에 빠져 본, 그것의 아픔과 위험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기성세대의 외침이 정말로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저 스스로를 높이는 용도로 사용되거나, 밑도 끝도 없는 강압이 되면 그건 문제가 될 겁니다.
말 그대로 꼰대가 되는 겁니다. 답답한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어차피 웅덩이에 빠질 텐데, 어차피 감기에 걸릴 텐데... 라며 혀를 차고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져서, 웅덩이 안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고, 감기에 걸려 오히려 더 큰 화를 면할 수도... 푹 쉬고 더 나은 생산성을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웅덩이에 빠지거나 감기에 걸리는 건 오롯이 저마다의 몫이니까요.
참 쉽지 않은 논제입니다.
저도 왜 이 이야기를 생각해 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 잠시 후회가 되지만. 어찌 되었건 꼰대의 말은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걸 돌아보자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성공담과 실패담엔, 분명 무언가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면 버리면 되고 일말의 가치라도 있다면 잘 기억해 두었다가 언젠간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게 이 말이었구나...라고 깨달음을 얻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 또 하나.
우리가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꼰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꼰대라고 생각하는 내가 '역꼰대'일 수도 있는 겁니다. 귀를 닫고, 상대방을 무조건적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건 기성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습성이 아닙니다.
왜 꼰대 말이 다 맞는지를 반추하다 보면, 분명 이전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될 겁니다.
깨달음의 즐거움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 이 깨달음을 강요하는 건 물론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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