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Jun 13. 2016

어느 로드매니저의 하루

극한직업 그리고 엄마라는 타이틀

어느 이른 아침.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눈을 뜬다. 하루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더 이상 한가하게 있을 수 없다. 서포트해야 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닌 두 명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오늘 하루 스케줄이 그나마 적어서 세네 개쯤이다. 물론, 두 명이니 그것은 배가 된다.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그녀는 코디 역할까지 겸한다. 각 끼니를 챙기는 것도 바로 그녀의 몫이다. 스케줄 fix, 준비물 확인, 코디 완료, 식사 지원 그리고 이동을 위한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건다.


어느 로드매니저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난 다음 생엔 주재원 와이프로 태어날 거야!"


주위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다음 생엔 주재원 와이프로 태어나고 싶다고. 

나도 가끔 주재원으로 일을 하다 과중한 업무와 생각보다 무거운 책임을 느낄 땐 와이프가 부럽기도 하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 가끔은 아이들 학교 보낸 후 쇼핑을 하거나 노천카페에서 즐기는 커피 한잔의 여유도 그렇다. 방학이라는 시간이 다가올라치면 나의 그 부러움은 더욱더 커진다.


하지만 난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여유가 여유가 아님을. 

어쩌면 와이프는 극한직업을 수행하고 있는 로드매니저 일지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 밥 짓고 아이들 깨우고부터 시작된 하루는 여간 길고 다사다난하다. 바닥엔 그 날 입을 옷을 위아래로 맞추어 놓는다. 코디의 역할이다. 이내 씻고 밥을 먹은 아이들은 차에 올라탄다. 와이프는 익숙한 듯 시동을 걸고 학교로 향한다. 잠시의 짬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준비되어 있는 그 날의 코디


"극한 직업, 로드매니저? 엄마라는 타이틀!"


사실 아침부터 일정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 전날 늦은 밤. 야근을 마치고 온 나를 맞이한 와이프는 정자세로 컴퓨터 앞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 중이었다. 언제 잘거냐는 물음에 와이프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했다. 지금 '엄가다'중이라고. '엄가다'는 '엄마 노가다'를 이르는 말임을 그때 알았다. 아이들은 손이 많이 간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줘야 하는 것들이 그저 밥이나 간식만이 아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교육과 감성, 그리고 성격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막중한 책임감에 기인한 것들이다. 여기에서 진행하는 학업도 따라잡아야 하고, 또 언젠간 돌아가야 할 한국에서 일어나는 트렌드도 아이들에게 전달해줘야 한다. 연애할 땐 상상조차 못했던 모습들이다. 그러고 보니 참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로드매니저와 같이 아이들의 이동은 물론, 아이들이 스케줄을 소화할 때 밖에서 대기하는 것도 오롯이 엄마인 와이프의 몫이다. 학교, 특별 활동 그리고 아이들 친구들의 생일파티 등. 일정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와이프는 여기저기로 불려 다닌다. 그나마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나. 어느 주말에 두 아이의 친구 생일 파티에 내가 직접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가 아이들을 내려놓고, 각국에서 온 부모들과 인사하고 또 생일 파티가 끝날 때까지 대기한다. 두 아이의 친구 생일 파티를 잠깐 따라다닌 것뿐인데 하루가 다 가고 말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부담이 안될 수 없는 일이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쉬자니 방치하는 것 같고, 말투 하나 행동 하나도 아이들이 따라 하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즉, 자유롭지 못하다. 모범을 보여야 하고 무엇 하나라도 교육적인 것 그리고 아이들의 꿈과 가능성을 가로막지 않는 언어와 가르침의 압박이 제법 크다.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변덕과 욕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까지 발생하면 로드매니저의 고충은 더해만 간다.


"여자에서 엄마로"


앞서 이야기했지만, 난 이런 모습을 와이프에게 기대해본 적이 없다.

연애 때야 그저 이성으로서만 좋아했을 뿐이다. 그래서 참 고맙고 또 때론 놀랍다. 이게 바로 모성애일까. 여성스럽고 예쁜 모습에 대한 기대만 가지고 함께했는데, 와이프에게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새롭지만 낯설지 않았다. '내 여자'를 어느 누군가에 조금은 빼앗긴 기분도 들지만 그것이 아이들이니 뭐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와이프도 '엄마'가 처음일 텐데 이렇게 잘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아마, 나도 우리 어머니에게서 그렇게 자라났을 것이다.

'모성애'에 대한 감사함은 말해 뭐할까. 혼자 잘 컸다고 착각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가끔 삶에 대한 큰 반성을 일으키게 하는 절대적이고 위대한 사랑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저 즐겁게, 자기들이 커가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로드매니저와 같은 극한 직업을 경험하며 뒷바라지하는 '엄마'의 노력과 땀방울을 알기나 할까. 하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그저 큰 욕심일 것이다. 나도 그러지 못했으니. 그래서 이러한 사랑은 내리사랑으로 승화되나 보다.


세상 거의 모든 엄마들이 이러할 것이다.

왜 이러한 극한 직업에 뛰어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절대적인 사랑과 책임감에 이끌려 그것을 영원히 자처할 것이다. 그러한 삶에서 오는 고단함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하나로 씻겨낼 것이고, 자신의 아픔보다는 살집이 조금 까진 아이 엄지손가락의 상처를 보고 더 크게 아파할 것이다. 흉흉한 사회 기사를 보면 모든 엄마들이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벌어진 일들이지만, 아마 그 사람들도 모성애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두려움과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트라우마로 인해 그것이 잠시 가려진 것으로 인한 과오였으리라.




'아빠'로서도 고된 점은 참 많다. 물론, '엄마'로서도 그렇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삶의 고단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각자의 '극한직업'을 경험해 나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삶' 자체가 극한 직업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그리고 힘들 때면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직업'은 우리에게 큰 힘이다. 아무쪼록 로드매니저가 극진히 키운 그 아이들이 자라 원하는 끼를 마음껏 펼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 극한직업에 뛰어들었을 때, 우리를 조금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제서야 나의 어머니를 뒤돌아보고 있는 바로 나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코끼리 가족과의 만남 '에트르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