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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2. 2016

코끼리 가족과의 만남 '에트르타'

그리고 예술가들의 휴양지


여정

네덜란드 to 프랑스 에트르타 (597km)/ 1박
에트르타 to 옹플뢰르 (45km)
옹플뢰르 to 몽생미셸 (188km)/ 1박
몽생미셸 to 베르사유 (348km)
베르사유 to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520km)



"1883년 2월 5일 오후 4시 53분"


천문학자들은 모네의 인상파 화풍을 감상하기보다는 그것이 그려진 시간에 집착했다. 그래서 기어이 밝혀낸 시간은 1883년 2월 5일 오후 4시 53분.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은 그렇게 다시 '규정'되었다. 1883년 2월 무렵 3주간 모네의 방문 중에 탄생한 이 작품의 정확한 날짜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천문학자들은 그 어느 2월의 3주 중 절벽의 높이와 태양의 고도를 분석하여 마침내 날짜를 집어낸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원하지 않았던 궁금증은 해결했지만 그 무언가를 잃은 느낌을 지우기도 힘들다. 그림이 그려진 풍경과 화가의 감정, 그리고 그 시간에 느껴질 수 있는 무궁무진한 것들이 그 규정된 시간에 지배받는 느낌이 들면서.


모네 '에트르타 절벽의 일몰' [구글 이미지]


"친구에게 처음으로 바다를 보여 주어야 한다면,
서슴없이 '에트르타'를 보여 주리라"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Alphonse Karr'는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그가 그 시대 에트르타의 관광 홍보 대사였을지도 모른다. 미래 관광객을 염두에 두고 말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그런데 그냥저냥, 마냥 허풍은 아닐 수도 있다. 예술가들과 소설가들이 실제로 작품 활동을 많이 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19세기 말엽부터 인상파 화가와 소설가들은 에트르타와 옹플뢰르를 오가며 휴양과 작품 활동을 병행했다. 이후에는 사실주의 화가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소로 거듭나, 사실주의 화가 '꾸르베'가 그린 '폭풍 후의 에트르타'는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에겐 '코끼리 절벽'으로 알려준 그곳"


전날 밤늦게 도착한 호텔에서 부스스 일어난 아이들. 2층 철제 침대에서 매달리고 올라가고 내려가는 장난에, 장시간 차 이동으로 지칠대로 지칠법한 아이들은 부스스했지만 눈은 초롱초롱했다. 아이들의 첫인사는 '오늘은 어디 가요?'였다. 그에 대한 대답은 '예술가들의 휴양지'도 아니고 '노르망디 몇 대 절경'도 아닌 바로 '코끼리 절벽'이라는 말이었다. 자동적으로 튀어나온 말. 그러고 보니 우리네들에겐 '코끼리 절벽'으로 더욱더 유명하게 알려진 곳. 물론,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충분했다. 


벌써부터 아이들은 '코끼리'를 볼 수 있단 말에 마음은 이미 붕 떠 있었다. 그것이 진짜 코끼리가 아니라 '코끼리 절벽'이라는 것은 아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진짜 코끼리가 아닌 것에 실망할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기분도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뭐, 가서 잘 설명해주면 되니까. 지금부터 이해 안 될 설명하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노르망디 해안, 에트르타 근처의 해안가는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자갈과 파도의 심포니는 참으로 색다르다.


자갈로 이루어진 해안은 처음은 아니었지만 색다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이들과 돌을 한 두 개 쌓아 올려 소원을 빌자고 했다. 첫째의 소원은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 어느 하나를 갖고 싶다는 거였다. 둘째의 소원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둘째는 그 장난감 두 개를 가지고 싶다 했다. 아빠 엄마는 우리 가족의 안녕과 평화, 그리고 행복을 빌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너희 두 녀석의 건강과 건승도. 그래도 나이에 걸맞게 장난감을 소원으로 비는 두 녀석을 보며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하긴, 너희가 벌써부터 우리들의 행복이나 안녕을 비는 것은 이상하니까. 이미 행복한 녀석들이니 굳이 빌지 않아도 되니까.


"코끼리 가족과의 만남"



저 멀리, 코가 굵은 아빠 코끼리. 코가 매끈한 엄마 코끼리. 코가 뭉뚝한 아기 코끼리까지. 진짜 코끼리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꽤나 관심을 가졌다. 다행히. 언덕을 헥헥 거리면서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이들은 신나 했다. 오를 때의 잠시 동안 고단함은 금세 잊혔다. 날씨가 그리 맑진 않았지만 우리 마음과 기분은 좀 더 맑았다. 바다와 절벽, 그리고 인근 마을과 바람의 조화는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다.


프랑스라서, 에트르타라서, 바다라서 좋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여서 더 특별했던 그 어느 날에.


두 아이들에게


WY, JY에게.


언젠가 너희들이 커서 아빠가 하나씩 남겨 놓은 글을 보게 되겠지. 우리 에트르타에 갔던 거 기억나니? 자세한 장면을 기억하지 못해도 좋아. 그냥 아빠랑 엄마랑 같이 여기저기 '가족이 함께' 다녔던 어렴풋한 기억의 조각이라면 그거라도 좋아. 우리가 나누었던 코끼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 코끼리 닮은 절벽에, 엄마 아빠 아기 코끼리까지 있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던 너희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해변 자갈을 쌓아가며 빌었던 너희 소원은 이미 이루어지고도 남았지. 소원보다 많은 장난감과 형 동생이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말이야. 우리 그렇게 우리의 바람을 하나하나 만들어가자. 가족이 함께 말이야. 아빠는 어렸을 때 이런 걸 누려보지 못했지만 지금 너희와 함께 하는 이 순간으로 다 보상받고도 남는다고 생각해.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 아이들. 우리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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