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Aug 20. 2023

누룽지라는 위로

배불러 죽겠다는 말을 할 때쯤 기어이 숟가락을 놓는다.

그러나 누군가는 누룽지를 외친다. 먹을 수 있을까? 더 들어갈 데가 있을까?


눌어붙은 밥이 물을 만나, 적절하게 퍼져 밥알이 둥둥 떠다닐 때.

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후루룩.

오물오물.


뜨거움을 뒤로한 채 한 숟갈 넣은 물과 밥알은 담백함의 극치와, 김치를 부르는 맛의 여백을 만들며 젓가락을 들게 한다.

김치 말고도, 젓갈이 있다면 금상첨화이고 사실 김치나 젓갈이 없어도 누룽지 그 자체로 훌륭하다. 국물이라 부르긴 뭐 하지만 후루룩 들이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것을 국물로 칭할 수가 있고, 물에 빠진 밥이라 할지라도 밥 자체가 주는 안정감은 국물과 만나 끝내 위로가 된다.


나는 누구에게 그러한 위로를 준 적이 있을까.

따뜻함과 든든함, 담백함과 모든 걸 아우를 수 있는 포용의 맛. 화려하지 않고 멋 부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완전식품에 가까운 누룽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술만 떠야지 했던 다짐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혹여라도 밥알 한 톨이라도 눌어붙어 있을까 국물과 바닥을 싹싹 긁고 나서야 숟가락은 다시 식탁 위에 놓인다.


누룽지라는 위로.

어느덧 배부름은 따뜻한 위로를 머금고 금세 꺼지고, 무엇을 더 먹고 싶다는 욕심보단 이 정도면 괜찮다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전에 먹었던 것들을 누룽지는 포용하며, 기꺼이 그것들을 돋보이게 한다. 억지로 찍어 누르는 소화가 아닌,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진정한 의미의 소화. 아니, 위로. 다른 말로, 어루만짐. 그래, 누룽지가 속을 달래 주니, 속과 연결된 마음이 안정감을 찾고 위로를 얻는가 보다.


이뿐일까.

말려도 먹고, 튀겨도 먹고. 설탕과 함께 당을 한껏 끌어 올리기도 하고. 먹는 방법도 다양한 누룽지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만날, 후식으로만 먹던 누룽지를 언젠간 가장 먼저 먹어봐야지.

모든 영광이 지나간 후 마지막을 장식하는 누룽지에게, 첫 풍미를 맘껏 뽐내도록 해줘야지.


이제껏 내가 받은 위로를, 누룽지에게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나에게 위로를 준 어느 것이든.

나는 고마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곱게 죽을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