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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22. 2016

슬럼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더 이상 극복의 대상이 아닌 가끔은 필요한 아이러니한 녀석

올 것이 왔다!


쿵!

무언가 떨어졌다. 무언가 급락하고 쇠퇴한 듯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 또는 서서히 다가온 이유모를 무기력감. 지나가다 누가 파 놓은 함정에 푹 빠진 것처럼, 또는 내가 먹는 음식에 누군가 무언가를 넣어 서서히 몸에 퍼진 것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오랜만이야.

슬럼프.


슬럼프에 나타나는 증상들


슬럼프라는 녀석은 누구에게나 오기 마련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다. 하긴, 슬럼프란 녀석이 사람 골라가며 다가가거나 일일이 사정을 봐주거나 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직장인의 '슬럼프'는 으뜸이라 칭할 수 있다. 월화수목 금금금이 몸에 밴 직장인. 그리고 학생처럼 방학도 없다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에 놓인 존재. 각자의 어깨엔 소량의 꿈과 비전이, 그리고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책임감을 이고 사는 사람들. 오죽하면 3년 주기로 그것이 찾아온다는 법칙이 있을 정도로 직장인인 우리에겐 친숙한 그것이다.


정확히 3년 만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그 녀석이 찾아왔다. 가끔은 내가 그 녀석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이번엔 외부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는 것 같고 호의적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엔가 모든 사람들이 나를 벼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던 요즘. 어디에도 내 편은 없는 것 같은 고립감. 그런 느낌을 받던 중, 고개를 들어보니 내 곁엔 어느샌가 그 녀석이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슬럼프'란 그 녀석.


슬럼프가 올 때면 다음과 같은 증상들이 나타난다.


초심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해도 별 감흥이 없다.

'초심은 슬럼프라는 자물쇠를 열어주는 열쇠'란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만능키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자물쇠이냐에 따라 열리고 안 열리고가 갈린다. 이번 슬럼프는 초심을 기억해내고 마음을 다잡아보려 해도 맘대로 되질 않는다. 설레던 다짐과 결의에 찬 도전 정신을 기억 해낸 들 별 감흥이 없다. 


만사가 귀찮다. 그저 본능에 충실해진다.

본능이란 녀석은 슬럼프란 녀석이 왔을 때 포텐이 터진다. 슬럼프라는 파도를 타고 훨훨 날아다닌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내가 주체하지 못하고 먹어댄다. 먹고 바로 자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평소라면 죄책감과 자괴감에 잠을 못 이루거나 바로 뛰쳐나가 미친 듯이 달리기를 해댔을 것이다. 그런데 만사가 귀찮다. 먹고 난 후의 후회, 그리고 자고 일어난 뒤의 불쾌한 마음마저도 그저 귀찮다.


자신감이 사라진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난 가진 것이 없기에 '자신감'은 나에게 가장 큰 무기다. 더불어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는 누구나 알아주는 나의 장점이다. 그런 내가 스스로를 한 없이 초라하게 여기기 시작한다. 내일 할 일에 기대를 하며 잠들던 '행복한 피곤감'이란 녀석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슬럼프'란 녀석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다. 그러니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잠자리는 영 괴롭다.


무엇보다, 행복하지가 않다.

우리네가 살아가는 이유는 아직 잘 모른다. 왜 태어났고 무엇을 위해 살고 죽으면 어떻게 될지는 절대자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지향점은 바로 각자의 '행복'이다. 그러한 면에서 확실한 건, '슬럼프'에 빠지면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은 기운과 감정이 나를, 우리를 지배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을 해도, 무엇을 먹고 마셔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의욕이 없다.



슬럼프는 극복의 대상이 아닌 걸


사실, 강산이 변할 정도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알게 된다. 슬럼프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그저 받아들여본다. 아, 나는 슬럼프구나. 그리고 나를 관찰해본다. 슬럼프라 그런지 나타나는 증상들. 위에 열거한 것들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친숙하게 나타난다. 


경험이 적던 옛적에는 슬럼프를 극복하려 발버둥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럴수록 속상하고 지지부진한 느낌은 커져만 갔었다. 어쩌면 슬럼프는 우리에게 쉬어가라는 신호일는지 모른다. 물론, 사회생활을 해가며 깨달은 것은 절대 슬럼프라는 것을 티 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슬럼프라고 이해하고 봐줄 직장이 아니다. 해야 하는 일은 최소한 잘 진행하고 마무리 지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슬럼프를 맘껏 즐겨야(?)한다. 말이 쉽지, 슬럼프와 함께 있는 동안 기본적인 업무라도 해낼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여지를 주어선 안된다. 그냥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상대방이 슬럼프라고 인상 찌푸리고 있다면 우리는 그 일을 대신해주게 될까? 아니다. 슬럼프면 다냐고, 프로의식이 없다고 비난만 해댈 것이다.


그나마 내가 억지로 발견한 슬럼프의 순기능(?)은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는 것이다. 별로 달갑지 않은 이 녀석의 어깨동무를 그래도 내가 거부하지 않는 이유다. 내가 성격이 초 긍정적이어서 이런 도덕교과서에나 나올만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슬럼프라는 녀석을 받아들이고 즐기며 그래도 나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찾아내 보는 것. 바로 나를, 우리를 위한 일이다. 나를 잡아먹으러 달려오는 상대의 힘을 이용해 상대를 엎어 쳐 보는 것처럼.


슬럼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렇게 슬럼프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잠시 멈추게 되었으니까. 잠시 나락으로 떨어져 의기소침해 보는 것도 삶에 필요하니까.


방향을 생각하게 된다.


무조건 달렸다. 쉼 없이 일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잠시라도 쉬면 불안하다. 그런데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잊은 지 오래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열심히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는 것'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다. 어쩌면 이것이 '초심'일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문득, 내가 열정에 차올라 가열차게 일하던 때가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소극적이거나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상사나 후배 사원들. 그들을 볼 때면 '왜 이리 열정이 없을까, 왜 이리 프로페셔널하지 못할까?'를 생각했었다. 너무나도 건방지고 배려 없는 생각. 어쩌면 그들도 그때 슬럼프였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그런 것처럼. 나 혼자 일을 사랑하고 회사를 사랑하고,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배려'란 말이 떠오른다. 사람들을 향한.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서도.


지난날을, 그리고 지금을 돌이켜본다.


슬럼프는 내일을 기대하지 않게 한다. 그래서 돌아본다. 지난날을, 그리고 오늘의 나를. 온갖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고 그때 왜 그랬을까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한다. 이 때문에 자신감은 바닥을 향한다. 자괴감이 들 정도다. 뭐하고 살고 있나, 왜 살고 있나. 지난날에 내가 이룬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하고 있는 건 잘한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괴롭힌다. 잘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초라해지는 순간.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순간. 돌이켜보니 겸손해진다.




언젠가 한 후배를 다그치며 내가 한 말이 기억난다. 업무상으로 많이 부족했던 그 후배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챌린지도 많이 하고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챌린지로 힘들어하던 후배에게 했던 말. 


"괜찮아. 자괴감이 들 때 그때가 의미 있는 시간이야. 자신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거든."


지금 그 말을 떠올려 후배의 입장이 되어보니, 참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도 맞는 부분이 있다고도 생각해본다. 어디서 주워들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자괴감을 느끼고 나락으로 떨어져 보면 얻는 것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보고. 그리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슬럼프는 어느새 다음 3년 후를 기약하며 이별을 고할지 모른다.


슬럼프로 힘들다면 그저 그렇게 받아들여보자. 극복하고 이겨내려 발버둥 칠 성격의 것이 아닌 것이다. 이를 통해 성장할 것이라는 고리타분한 논리는 아니더라도, 슬럼프를 겪는 스스로를 바라보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슬럼프를 피하려고만 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슬럼프에야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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