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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15. 2016

공기의 냄새

공기 반, 추억 반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낯선 향기를 맡았다.


특별날 것 없는 무색무취의 공기가 코에 닿았건만, 문득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코로 들이켜 마음으로 느끼니 이내 그 공기는 '낯선 냄새'로 규정되어 다가왔다. 낯설다는 느낌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또 싫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가 새롭게 다가왔다. 왜 갑자기 그렇게 그 공기의 냄새를 낯설게 느꼈는지는 아마도 내 마음만이 알 거다. 그럴 거다.


살아가다 보면 공기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이 기분 탓인지, 아니면 정말 어디에서 부턴가가 날아오는 그것인지 모르지만 분명 그럴 때가 있다.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하층 부분을 구성하는 무색투명하고 냄새가 없는 여러 가지 기체의 혼합물

그 자리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분이나 감도는 분위기

산소와 질소가 약 1대 4의 비율로 혼합된 것을 주성분으로 하며 소량의 아르곤과 헬륨 따위의 비활성 기체와 이산화 탄소를 포함한 그 것.


모두가 아는 이 공기란 존재는 누구에게나 다가가며, 누구나 마시고 있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오히려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래서 공기는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냄새를 일으켜 자신을 알아차리게 하는지도. 무색무취임이 분명한데 우리는 문득 깨우쳐 공기가 있음을 알게 되고, 들숨과 날숨을 크게 들이키고 내쉼을 통해 한 번 더 확인한다.


흥미로운 것은 규정할 수 없는 어떠한 냄새, 향기, 감도는 분위기 등의 그것들이 그 순간을 기억하게 하고 또 과거의 어떠한 순간을 되새기게 한다는 것이다. 즉, 공기에는 우리가 아는 의미 외에 '추억'이나 '순간의 기억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공기 반, 추억 반


소리라는 것도 결국은 공기를 매개체로 전해지듯이, 냄새 또한 공기를 타고 퍼져 나간다. 이처럼 공기는 매개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공기는 우리를 시간과 시간, 그리고 추억과 추억 사이를 무던히도 애쓰며 연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겨울에 코끝이 알싸한 공기의 냄새를 맡았을 때 난 10년 전 어느 외로웠던 겨울이 생각나고, 사과향이 풋풋한 어느 브랜드의 껌 냄새가 공기를 타고 올 때면 손하나 부끄러워 잡지 못한 채 거닐던 첫사랑과의 그 거리가 생각난다. 한여름 지열이 만연한 아스팔트 위에 조금 떨어진 빗방울들로 상쾌하진 않지만 그리 역하지는 않은 그 특유의 냄새가 올라올 때면 어느 뜨거웠던 여름이 생각나며, 가끔 들이마시는 흙이나 잔디 냄새가 코 끝에 닿을 때면 그 바닥을 박박 기며 포복하던 군대 시절도 떠오른다.


공기 반, 추억 반이라는 말이 절로 어울릴 정도로.




그저 하루가 반복되던 하루였는데, 출근길의 낯선 향기는 그렇게 나에게 많은 생각과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자칫, 무료한 어느 하루가 될지도 몰랐을 텐데. 언젠가 몇 날,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이와 같은 낯선 공기의 냄새를 느낄 때면 오늘 아침의 출근길이 떠오를 것이다.


공기가 곁에 있으나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우리의 추억은 우리 주위에서 열심히 스스로를 만들고 있다. 너무 많은 그 추억들은 일일이 기억될 수가 없기에, 추억은 그렇게 공기와라도 결탁하여 훗날 언젠가 우리에게 기억되고 싶어 안달하는지도 모르겠다.


공기가 있기에, 추억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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