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떠나며 잊어버린 것 또는 잃어버린 것
한 해의 마지막 날은 분명 의미가 있다.
어쩌면 그저 시간의 흐름인 것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기준에 갇힌 마음가짐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그 기준에 맞추어 마음을 다잡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인사를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분명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오늘. 어느 새 모니터를 마주하고 다른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그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질문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분명하게 보였다.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나는, 우리는, 당신은 무엇을 잊어버리셨나요? 또 잃어버린 건?
'잊어버리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테지만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차이는 차치하고, 무언가에 대한 상실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어보면 어찌 되었건 크게 구분 짓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의미 있는 날에, 어휘에 따른 구분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수능을 하루 앞두고 택시에 수험표를 놔두고 내린 트라우마로, 나는 택시에서 내릴 때 항상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잊어서 내렸으니 잃어버린 그 아픔과 상실감. 당최 잊을 수가 없다.
왜 잊었을까에 대한 자책감.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라는 질문에, '택시'에서 내릴 때와 같이 '올해'를 떠나며 잊은 건 없는지, 잃어버린 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계정'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무수한 것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랑을, 자신을, 희망을, 사람을, 용기를, 목적을, 비전을, 시간을, 초심을, 생각을 잊어버리셨나요?
직장인으로서 내가 얻은 건, 내장 지방과 스트레스, 그리고 가지 못한 휴가 일수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 새, 사람이 정한 어느 한 기준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잊거나 잃었을까?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우리 자신
시간을 내가 보낸 걸까, 아니면 내가 떠나온 걸까?
가는 세월이, 추억이 그리고 그리고 꿈들 또한 나에게서 가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떠나온 걸까?
알고 보면 나는 시간을 보내지도, 그리고 떠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시간 안에 있다.
세월과 추억, 그리고 꿈 또한 보내지도 떠나오지도 않았고, 이내 나는 그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즉, 나는 여기에 있다는 것이고 나 자신이 나를 응원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응원하 것인가에 대한 고독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떠아온 곳, 나아갈 곳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내가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그렇게 굳건히 서 있어도 세상은 변한다. 지금도 변한다. 나도 변한다.
가끔은 자신의 현실을 박차고 성공한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거대한 아우라에 나 자신이 초라해진들, 당장 그들과 같이 될 수 없다면 나의 삶에 머리를 처박고 여기에서 꽃을 피우리라는 집념으로 지금을 사랑해야 한다.
어쩌면 현실을 박차고 성공한 사람들도, 현실을 박찼을지언정 부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있는 중요한 곳이요 역사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여기 지금 내가 있는 여기가, 이곳이, 이 순간이, 이 현실이 역사의 출발점이며 나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바라본다면 현실마저 허상이 될 수 있음을 에둘러 표현하고자 했다.
물론, 나에게 쓰는 나의 개똥철학이자 응원가임을 밝혀둔다.
허세 가득한 생각이라도, 앞 뒤 안 맞는 몇 글자라도, 무의미한 이러한 주절 거림도 오늘과 같은 '의미 있는 날'에 이렇게 글로라도 외치면 언젠간 어쩌면 나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로 돌아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이 글을 쓰는 나를 바라보고 스스로 응원하는 사람임을 실천해 간다면.
그리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잊을 때까지 잊은 게 아니고, 잃을 때까지 잃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기 전에 한 번 더 소중히 나와 주위를 돌아봐야겠다.
어쩐지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