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

by 스테르담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잠시, 몇 시간이 남은 적이 있었다. 햇살이 따사로웠다. 몸이 나른했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에서 명료한 다그침이 내려왔다.


'이럴 시간이 어디 있어? 하나라도 더 봐야지. 빨리 일어나!'


내 머리는 마음의 여백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어 있는 모든 곳을, 그 어떤 색으로라도 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날만큼은, 나와 내 몸은 그 명령을 거역하고 싶었다.


도심이 보이는 호텔 테라스에서.

분주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채, 따뜻한 햇살과 북적한 광장 소리 그리고 어느 무명 연주가의 기타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곤히 잠들었다. 분주함을 명령 내린 머리는 혀를 찼지만,. 30여분 간의 시간... 여백을 남긴 그 시간은 그때의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명징한 순간이자 추억이었다. 그 어느 사진보다도 더 깨끗하고 맑았던.


삶엔 확실히 여백이 필요하다.

여백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정서를 가진 우리네에겐 더 절실한 무엇이다. 이러한 정서를 가진 것에 대해, 나는 그것을 잘못이라 말하거나 그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삶은 역설적이므로, 여백을 가지지 못해 왔기에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니. 그리하여 마음의 여백을 찾아가는 걸음걸이를 하나 둘 떼게 되었으니 말이다.


채우려 할수록 마음은 공허해지고.

공허함은 비우려 할 때 오히려 채워진다는 삶의 아이러니함은, 언제나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인생의 난제다.


채우려 하지 않는 마음.

남아 있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


덜 조급해하면.

덜 욕심내고자 하면.


금세 풀릴 것들일 텐데, 머릿속 얼기설기한 것들이 곳곳의 여백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 한다.


여백은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여백을 찾고 받아들이는 건, 똑똑함이 아니라 따뜻함이니까.


따스한 햇살에 속아, 곤히 잠들었던 그때가 갑자기 떠오른다.


아마도 지금, 나에겐 삶의 그 어떤 여백이 필요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때론, 멀리 가는 여행이 필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