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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나의 쓸모야

by 스테르담
일이 힘들어?
힘들지 않아서 그게 힘들어.
현장이 그리워?
세상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진 기분이야.

넌 나의 쓸모야.
난 너의 쓸모고.

<드라마 '무빙', 장주원과 황지희 대화 중>


드라마를 보다 울컥했다.

'쓸모'란 단어가 이리도 쓸모가 있었을까. 무심코 나온 말 같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극찬이 이게 아닐까란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큰 의미가 담긴, 넌 나의 전부야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이고 깊은.


근래 들어 나는, 나의 쓸모를 묻고 있었다.

그래서 울컥함이 마음으로부터 치솟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해석의 동물이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제멋대로 받아들이고 자유자재로 해석한다. 스스로의 쓸모를 묻고 있던 차에, '쓸모'란 말을 들으니 이건 나에게 주어진 고민에 대한 답의 힌트가 분명했다.


살면서 간혹, 내 쓸모를 스스로 느낄 때가 있었다.

그건 대개 외부로부터였다. 누군가에게 칭찬받았을 때, 직장에서 인정받았을 때, 사고 싶은 걸 마음껏 사는 소비를 할 때. 또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등. 외부로부터 온 쓸모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칭찬의 여운은 그리 길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간 쌓아온 쓸모의 정도 이상을 갉아먹었으며, 소비의 끝은 허무함이고 사랑이란 것은 언제든 이별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쓸모란 말은 사회적 역할과 연계되어 있다.

각자가 가진 페르소나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의 쓸모를 규정한다. 돈 버는 기계가 되어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리면, 가장이라는 쓸모가 입증된다. 아니, 그것은 입증해야만 하는 것이다. 입증하지 못하면 가족이란 공동체는 성립되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쓸모를 정하는 게 아니라, 쓸모가 내 삶을 규정한다. 사회적 틀에 맞추어진 쓸모를 감당하지 못하면 존재는 도태된다. 그래서 우리는 동심을 앙망한다. 어릴 때에는 자신의 쓸모를 얼마든지 스스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 없는 상상 속에서, 아직 남아 있는 인생이라는 긴 여운 안에서 동심은 피터팬도 될 수 있고 하늘을 날 수도 있으며 대통령과 과학자 등, 대치동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성적에 관계없이 원하는 건 모두 그 쓸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자각할 때쯤, 동심은 사라진다.

사라진 동심은 각자의 색깔을 톤다운 시키고, 우리는 어느새 사회적 쓸모에 따라 좌우되는 회색 인간이 된다. 회색 인간이 되면 자문하지 않는다. 왜 존재하고 있는지 조차 잊는다.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답이 없다고 질문을 멈추면 안 된다. 질문을 멈추는 건, 왜 존재하는지를 잊겠다는 말이다. 좀비처럼 살아가는 날이 하루하루 쌓이고 있다면, 스스로의 색깔을 돌이켜 봐야 한다. 회색인간이 된 건 아닌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멈춘 건 아닌지.


그리하여 우리는 쓸모를 찾아 헤맨다.

타인이든, 소비든. 우선 쓸모를 찾아내어야 존재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외부로부터 성립된 쓸모는 오래가지 않는다. 지금부터 해야 할 건,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난 나의 쓸모야.


문득, 제멋대로의 받아들임과 자유자재의 해석이 발동했다.

그래. 있는 그대로. 내게 덮인 수 백, 수 천 개의 페르소나를 거두어내고 보자. 누군가가 나의 쓸모고, 내가 누군가의 쓸모인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돌이켜야 하는 건, 나는 스스로에게 쓸모라는 것이다. '쓸모'라는 말을 외부에서 찾을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흩뿌려대며 그 가치를 입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필요도 없다. 나는 숨 쉬고 있고,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고 있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질문을 하고 있으니.


글을 쓰는 건, 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그 여정은 질문을 위한 것이며, 스스로 내어 놓은 질문에 어설픈 답이라도 내어 놓는 건 스스로의 쓸모를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소비되고, 소모되고, 소진되어가고 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지만, 역설적으로 오늘은 우리의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매일을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존재의 이유가 죽음이라고 해도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죽음이 보장되어 있기에 존재의 가치가 쓸모를 발하는 삶의 해괴한 법칙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쓸모를 찾아가야 한다는 숙제엔 온 마음으로 동의한다.


스스로에게 스스로 쓸모가 되어야.

누군가에게도 쓸모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쓸모도 모른 채, 누군가의 쓸모가 되려 했던 허접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더불어, 스스로의 쓸모를 묻는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의 쓸모는.

내가 알아차리고.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쓸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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