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면 아련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스테르담

기억은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

시간은 감정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시간은 지독히도 연결되어 끝내 조화를 가장한 부조화를 만들어내며, 부조화스럽지만 조화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강요를 일삼는다.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것들이 그 예다. 그때는 죽도록 미웠고, 그때는 죽도록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과 상황도 어느샌가 미화되고 마는 것들. 기억과 감정은 시간에 버무려져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지나가는 것투성이다.

나를 지나간 것들은 나에게 미련이 없다. 알아차릴 새도 없이 지나간 것들에 대해서도 나 또한 미련이 없다. 그러다 눈에 띈 무언가, 그러니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라도 있으면 나는 뒤를 돌아보아 그것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안간힘을 쓴다. 그 안간힘을 비웃기라도 하듯, 풍경은 어느새 새로운 것들로 채워지고 지나간 것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운명이다.

삶이 뒤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 그것은 기억으로 조작된 착각이다. 지난날을 돌아볼 뿐, 그 순간조차 우리네 삶은 앞을 향한다. 후진 기능이 없는 자동차처럼. 등 떠밀려 나아가는 시계처럼. 꾸역꾸역 우리네 삶은 재빠르게, 째깍째깍 앞으로 나아간다.


상대적으로 바라보면, 지나가는 것들에게 있어 우리는 그들을 지나가는 무엇이다.

내게서 멀어지는 것들은, 그것들로부터 내가 멀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사람에게서. 시간에게서. 기억에게서. 추억에게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삶과, 제자리에 있으려 하는 그것들과 나 사이엔 간극이 발생하고. 그러함으로 멀어지는 것들은 마음의 시야에서 흐릿해진다.


흐릿해지는 것들은 아련하다.

또렷하지 않고. 분명하지 않고. 희미하다. 그래서 더 자세히 보고 싶지만, 그럴 새가 없다. 삶은 그것들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는다. 내내 흐릿한 그것들은 더욱더 아련해진다. 기억하면 할수록, 추억하면 할수록. 또렷하지 않고 희미해지니 미화될 수밖에.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그 전쟁터에서 옥신각신하던 기억은 온데간데없고, 위에서 바라보는 미화된 세상에 그저 감탄하고 말뿐. 붕어의 기억이 3초뿐이라고, 붕어를 놀릴 자격이 우리에겐 없다.


지나가면 아련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해가 쨍쨍한 낮과 달이 둥근 밤 사이, 어스름한 그 어느 순간. 나를 웃게 하는 것과 울게 하는 그 어느 중간. 애매함이라는 말이 떠올라, 이도저도 아닌 것 같은 하루의 연속. 아련해지는 것들을 붙잡으려 해 보지만, 그것들은 지나가고 있고. 지나가는 것들은 애써 붙잡지 말아야지...라는 본능적인 마음의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나는 무언가를 뒤로 하고 이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련해진 것들에 대해 나는 미련을 접기로 한다.

대신, 아련해질 것들에 대해 나는 정성을 다하기로 한다.


그 과정과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어차피 지나고 나면 이리저리 범벅이 되어 미화될 그것들에 대해.


고로.

아련함은 아름다운 것이며, 아름다움은 나를 지나가는 모든 것에 숨어 있음을 나는 애써 잊지 않으려 한다.


선명히 기억하지는 않더라도.

분명하게 떠올리지는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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