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막연하게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유는 딱히 없다. 아니, 너무 많아서 그러해야 한다고 할까.
영문도 모른 채, 숨 쉬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 숨 쉬는 자의 몫이고, 숨 쉬지 않는 자는 말이 없으니. 해괴하고 망측한 삶의 순환은, 우리를 영문도 모르게 그저 살아가게 만든다. 그러다 웃고, 울고. 기뻐하고 화내며. 억울함을 잠시 잊고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본질적인 의문이 풀리지 않는 삶은 그야말로 고단함 그 자체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을까.
삶의 풍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잘못한 게 없는데도 무언가 크게 잘못한 기분이다. 신이 내리는 단죄일까. 아니면, 그의 장난일까. 길을 걷다, 의도치 않게 개미를 밟아 죽이는 기분이 그러할까. 장난으로 던진 돌에, 우연히도 맞아 생사를 오가는 개구리가 우리일까. 신의 존재와는 별개로,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아니, 따지고 싶다.
이것이 단죄라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이것이 장난이라면, 그 장난을 멈추어주길.
동이 트는 새벽에 삶을 감탄하고.
해가 지는 저녁에 삶을 한탄한다.
또 하루가 주어짐은 감사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삶의 수수께끼는 버겁기 그지없다.
원죄(原罪)란, 아마도 우리가 태어난 그것이 아닐까.
태어남으로 얻은, 씻어낼 수 없는 죄를 규정하는 존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엇을 위해 우리는 그리도 아등바등하며 사는가.
우리는 무엇을 그리 잘못했을까.
내 죄를 사하고 싶다.
네 죄를 사하고 싶다.
영문도 모른 채, 나도 모르게 판결된 잘못을 나는 거부하고 싶다.
그러나.
또다시 떠오른 태양에 나는 속고.
또 하루를 살아가겠지.
살아 있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잘못함이 있는 건 아니라고.
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나지막이 말해주어야겠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잘못된 건, 그저 없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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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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