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긍정적 허무주의)

by 스테르담

무어라도 되는 것 마냥 삶에 대들 때, 내동댕이쳐진 건 다름 아닌 나였다.

삶의 희로애락을 무방비로 받아들이자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되지 않은 삶의 해프닝은 때론 설렘이 되지만, 대개는 우울함과 두려움이다. 예고되지 않았기에 어찌할 바 모르는 바들바들함은 불안으로 승화되어 일분일초 뒤를 걱정하게 한다. 이것이 절대자가 우리에게 심은, 그가 우리를 농락하는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먹고 싶은 반찬을 먹고, 그러하지 않은 걸 거부하는 편식이 삶엔 통하지 않는다. 삶은 대체로 그 맛이 쓰다. 달달함은 한때이며, 달달함을 찾아 방황하는 동안 우리는 상상하지 못한 맛을 경험한다. 물론, 그 맛은 우리가 바란 게 절대 아니며,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들도 여럿이다.


나에겐 생명이 있으나, 이 생명이 어디로부터 왜 왔는지 모른다.

존재의 이유를 모르는 존재는 허무 그 자체다. 그러나 숨을 쉬고 있으므로 존재는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허무와 싸우는 시간은 일상으로 대체되고, 일상 속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은 가련하다.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생각이란 걸 하지만, 생각의 범위는 그리 넓지도 깊지도 않다. 허무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내던져지는 하루하루는 하나의 사투다. 이러한 사투를 벌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아, 나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증명해 내야 하는가?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세차게 들어오는 삶의 역경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좋아질 것이 별로 없다. 몸은 노쇠해지고, 사람들은 떠난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 이별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가득한 것들이 군대처럼 밀려온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매 순간을 죽어가고 있는가. 분간할 수 없는 그 경계에서 존재는 허무해질 수밖에. 오늘이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라. 오늘은 내 삶의 가장 늙은 날이기도 하다.


허무적으로 허공에 삿대질을 하다가 내가 깨달은 단 한 가지 진실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다. 내게 몰려오는 크고 작은 일들은, 마치 나비효과와 같이 상상하지 못한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때의 선택과 결정이, 단순히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보는가? 아니다. 작은 선택 하나가, 지금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계산할 수 없는 복잡함이다. 그러하므로 삶은 곱하기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내게 밀려오는 수많은 기쁨과 슬픔은 너무나도 큰 요동을 안겨다 준다.


그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스스로를 0으로 규정한다면? 곱하기는 0으로 귀결된다. 0에 아무리 큰 숫자를 곱해본들 내어 놓는 숫자는 0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마음은 편해진다. 삶은 어차피 허무하다. 그렇다. 나는 허무주의자다. 그러나 나는 허무를 긍정한다. 지금까지는 허무와 다투는 자유롭지 않은 의지였다. 지금은 다르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허무를 인정하는 자유로운 의지다. 얼마든지 허무가 나에게 다가와도 좋다. 나는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아무것도 아니니, 남보다 잘 날 이유도 없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나를 비껴간다.


오늘을 살아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오늘도 죽어간다.

어제보다 하루 더 허무해졌지만, 허무로 채워진 또 하루는 육체의 노쇠를 상쇄한다. 죽어감으로써 얻는 삶의 의미는 불멸의 생명을 가진 자가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이며, 유한한 삶에 갇힌 자의 존재는 허무하기 짝이 없지만 짧은 시간 안에 짜내는 삶의 의미는 고결한 무엇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삶의 자세가.

오늘도 나를 자유롭게 하므로, 이렇게 나는 긍정적 허무주의자로 또 하루를 살아내고 또 하루를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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