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라이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있는 곳에 또라이가 없다면, 내가 또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신봉한다. 또라이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르거나, 내 말에 동조하거나, 나에게 그 어떠한 불편함을 준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상대를 또라이로 규정한다. 그 상대가 없다면,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이란 말은 꽤 오묘하다.
나에겐 맞는 것이 너에겐 아닐 수도 있고, 너에게 맞는 것이 나에겐 아닐 수도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을 틀릴 수 있으며,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렸을 수도 있다. 내 욕망이 너의 것과 다르면, 어김없이 서로에게 삿대질을 해야 하는 일이 일어나고 이러한 상황에서 또라이는 양산되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바람은, 서로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또라이와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를 두고 나는 그들을 '기인'이라 일컫는다.
'기인'은 '또라이'와는 결이 좀 다르다. 뭐랄까. '상대적'이란 말보다는 '절대적'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우리는 모르는, 그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나 할까. TV에 나오는 기인은 서커스나 묘기와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만, 일상 속에 숨어 있는 기인은 '능력'이란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인'들이 모인 명소가 있다.
첫 번째는 직장이다. 두 번째는? 놀랍게도 집이다. 직장 상사, 동료, 후배. 가릴 것 없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또라.... 아니 기인들이다. 가족이라고 예외일까. 수십 년을 살아도 당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 가족은 기인으로 돌변한다. 좀 더 나아가면, 또라이가 될 수도 있고.
앞서 말했지만, 이러한 일은 욕구의 부조화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욕구는 단순히 본능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라는 바와 지향하는 곳이 포함된 좀 더 큰 의미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왜 저따위로 말을 할까?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네.
주는 것 없이 미운 이 기분은 뭐지?
사사건건 부딪치며 나를 불편하게 하는 재주.
이렇게 보니 '기인'과 '또라이'의 차이가 뭘까... 갸우뚱해지지만,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기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해 주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다.
저렇게 되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는 것도 배움이지만.
저러지 말아야지...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것도 배움임을 돌이켜보면, 또라이라고 규정하고 피해버리는 것보단 기인이라 규정하고 그들만의 생각과 욕구 그리고 세상을 이해해 보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어찌어찌하여 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해하여 수혜를 얻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고.
기인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있는 곳에 기인이 없다면, 내가 기인이다.
각자의 세상을 존중해 주길.
상충하는 세계에 대하여 더럽다고 피하기만 하지 말길.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려면, 내 마음의 문부터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하며 오늘 만난 모든 기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기인이라는 나를 만나 마음고생한 분들에겐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기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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