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지 않았다. 잘 찾아보자.
자신에게 지금 재빨리 질문을 던져 보라.
"나는 창의적인 사람일까?"
마음에 바로 든 생각은 무엇인가?
당신이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 창의성이 있다고 생각할 테고, 자신이 직장인이라면 아마 답변보다는 오랜만에 들은 '창의적'이란 단어에 무덤덤히 반응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말한다.
직장인이 되면 단순해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창의성이나 아이디어는 점점 쇠퇴해져 간다고.
내가 대학생 때 본 직장인은 일도 척척, 재테크도 척척, 뭐든 척척 해내는 척척박사 같았다.
대학생이 성인이라면, 성인인 내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정말 '어른' 이었다.
그 당시 직장인이었던 선배가,
"직장 다니면 더 바보가 된다. 오히려 시야가 좁아지고 사회 돌아가는 건 잘 몰라."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땐 그저 배부른 자의 거만한 위로인 줄 알았다.
"왜 직장인은 창의성과 멀어질까?"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란 신조어를 듣고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인터넷 상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끝까지 듣고자 하는 사람을 빗대어하는 말인데, 나는 이 한 단어가 우리 직장 생활을 분명히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랐던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의 문화는 더욱 그렇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분이 말씀하셨고, 따르면 된다.
예산은 정해져 있고, 갈 길은 정해져 있으며, A를 보고 B라고 하셨으니 이제부터 A는 B인 것이다.
너는, 우리는 답만 하면 된다.
따르고 실행하고 일하기만 하면 된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창의성과.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직장에서 바라는 창의성은 내가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신입사원의 자기소개 시간이다.
온 임직원이 강당에 모여 참으로 Fresh 한 신입사원들의 자기 소개를 듣는다.
휘황찬란하다.
각종 PPT기술은 물론 CF와 영화의 그 어딘가쯤의 Quality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때로는 박장대소하며, 그 신선함에 큰 박수를 보낸다.
"와, 진짜 요즘 애들 창의적이다!"를 외치며...!
그런데 재밌는 것은, 1~2년이 지난 뒤다.
당시 가장 창의적(?)으로 자기 소개를 했다고 평가받았던 친구들은 이미 회사와 안녕을 고했다.
당시 인정받은 '창의성'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창의성'이 불일치한 경우다.
"직장이 나를 창의성과 멀어지게 하는 걸까?
아님 내가 창의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직장에서 바라는 '창의성'은 무엇일까?
일단 직장에서 바라는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질문.
직장이 나를 창의성과 멀어지게 하는 걸까, 아님 내가 창의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 걸까?
잠시만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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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답은, "둘 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러한 문화이니, 나는 창의성과 멀어지고 있다고 무언가를 탓해도 좋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는 창의적인 시도를 하긴 한 걸까?
모르긴 몰라도, 이 질문에 자신 있게 "Yes"를 외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난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고 자위할지 모르고, 더 이상 고민해서 이야기해봤자 안 통할 것을 아니 지레 포기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필요한 창의성'에 대해 고민해보자."
"직장에서 '바라는' 창의성"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았는데, 문장을 조금만 바꿔보겠다.
"직장에서 '필요한' 창의성"으로.
직장에서 바라는 창의성이 따로 있겠는가.
정해진 답을 '창의적'으로 따라주는 것이 바로 그 답일 텐데.
사실 그러기만 해도 그건 실력이라 본다.
아무 생각 없이 가는 것보단, 정해진 답을 가더라도 뭔가 고민하고 간다는 것은 "Better than nothing"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고자, 직장에서 '필요한' 창의성으로 고민해보자는 거다.
이제까지 수동적으로 생각을 해왔으니, 좀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 (창의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것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얼마 전 췌장암 진단키트를 발명한 어린 소년이 억만 장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 친구의 말은 의외로 싱거웠다.
자신은 새로운 것을 한 것이 없고, 그저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긁어모아 짜 맞추고는 몇 천 번의 실험을 통해 드디어 성공을 해냈다는 것이었다.
"'창의성'과 멀어진 진짜 이유를 생각해보자.
세상을 바꾸지 못해도 좋다."
어쩌면 회사에서 필요한 '창의성'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이미 정해져 있다고 포기하지 말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안 하던 고민을 해보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그 고민을 창의적으로 해보는 것.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변화부터 꾀하고, 진득히 밀고 나가 보는 것.
커피 한 잔 타오라는 심부름에 기분만 나빠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맛있게 탈 것인가,
기획서 한 장을 만들더라도 기존의 틀은 존중하면서도 내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창의적으로 담아 볼까.
답이 당장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생각의 출발이 어쩌면 나를 더욱더 창의적으로 만들지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제한된 조건에서 발휘되는 창의성이 진짜 실력일 것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그 많던 창의성은 어디로 갔을까... 에 대한 물음.
과연 내가 '창의성'을 가지고 있긴 했었을까?
'창의성'과 담을 쌓은 건 내가 아닐까?
세상을 바꾸고, 판도를 뒤집을 거창한 '창의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내가 가지고 있는 '창의성'과 회사에서 필요한 '창의성'을 어떻게 align 시킬 것인가?
'창의성'이 모든 열쇠는 아니다. 나에겐 '창의성'을 뒷받침할 끈기와 오기가 있는가?
오늘도 하루하루 고민하고 성장하고 거듭나는, 우리는 '창의적인' 직장인임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