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한 불만
어른이 되어감을 느낄 땐 언제일까.
어렸을 땐 쳐다도 보지 않던 음식을 먹을 때. 문득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때 일까.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아빠가 가장 뼈저리게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때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인 것 같아. 더불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때 배웠던 상식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보았을 때. 초록불이면 자동차는 반드시 설 줄 알았고,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려지지 아니하며,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새치기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 세상. 하지만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며, 나조차 때로는 그것들을 어기며 산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 평생 피터팬의 마음으로 살고 싶었는데, 어느새 언젠간 날 수 있다는 꿈을 잊어버린 것 같아.
그렇게, 세상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만큼 아빠는 어른이 되어버린 거란다.
정의란 무엇인가?
약 10년 전.
하버드 대학교의 한 교수가 쓴 책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어. 책의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였어. 특이하게도, 다른 나라에서도 번역이 되었지만 유독 한국에서 돌풍을 일으켜 금세 100쇄 이상을 찍어낸 책이야. 어쩌면 그때 우리는 그렇게 '정의'에 목말라 있었을지 몰라. 가진 사람은 더 많이 갖고, 없는 사람은 더 없는 시대의 고착. 가졌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는 착각에 빠진 갑질. 을이었다가 갑이 되면 그토록 저항하던 갑의 행동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의 모순. 권력에 취해 온갖 부도덕한 일을 행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
'평등', '형평', '공평', '공정'이란 단어와 개념이 흐릿해진 세상.
점점 더 이렇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정의'란 단어를 찾아 헤맸을 거야. 아빠는 위에 말한 4가지 단어가 비로소 유기적으로 어우러질 때 세상은 정의로워진다고 믿어.
각각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의미는 상대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다를 수 있단다.
잠깐, 각각의 사전적 뜻을 한 번 볼까?
평등: 권리나 의무, 신분 따위가 차별이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
형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맞음
공정: 공평하고 올바름
공평: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름
어때?
평소에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그 의미가 같은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듯하면서도 같아 좀 혼란스럽지? 아빠도 그래. 그래도 굳이 그 관계들을 살펴보자면 아래 '공평'에서부터 위 '평등'으로 그 의미가 수렴되는 것이라 생각해. '공평'은 뭔가 산술적인 느낌이 강해. 각각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단 그저 똑같이 무엇을 나눈다는 느낌이랄까. 그에 반해 '공정'은 누군가의 판단이 개입된 윤리 또는 사상이 녹아 있는 것 같아. 더불어, '출발선에서의 평등'과 같은 사회적 개념으로도 쓰이고. '형평'은 이러한 개념을 좀 더 보편적이고 일반화하여 더 넓게 사용되는 개념이야. 때론 '상황에 맞도록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 영국의 관습법에서 정형화된 사건이 아닌 경우에, 왕에게 자비와 양심을 호소할 때 쓰이는 개념이기도 해. '평등'은 아래 세 가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고.
하지만 이렇게 수직적으로 보지 말고, 유사성으로 본다면 아빠는 '평등'과 '공평'을 묶고, '형평'과 '공정'을 묶을 거야. 이런 개념을 잘 나타낸 그림을 잠시 볼까?
자, 어때?
왼쪽은 '평등'과 '공평'의 개념일 거야. 우측은 '형평'과 '공정'의 것이고. 무조건 나누어 줄 것이냐, 상황을 고려하여 나누어 줄 것이냐의 차이.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쉽지 않아. 왼쪽은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오른쪽은 키가 가장 큰 사람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
누군가의 '불만'이 제기되는 순간, '정의'란 절대적 개념은 상대적 개념이 되면서 그 가치를 잃고는 연기와 같이 사라진단다.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아!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길!
하지만 현실은 이것보다 더 혹독해.
진짜 현실을 보여 줄까? 아래 그림과 같아.
이건 어쩔 수가 없단다. 자유 경쟁,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은 애써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가 없어. 위에서 말한 대로, 이 자체가 정의로 보이는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바로잡으려는 강제성은 '정의'라는 의미를 오히려 퇴색시키거든.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이러한 차이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이 그림과 같은 현실에서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단다. 그것 참 씁쓸하게도.
요즘엔 '수저 계급'이란 말도 많이 들어봤을 거야.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지만, 현실에서 소스라치게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개념이라 생각해. 같은 출발 선에서 출발하는 다른 계급의 모양새를 보면 '세상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란 걸 바로 알 수 있을 거야.
누군가의 '불만'이 하나라도 없을 수 없는 세상.
그러니 어쩌면 '정의'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닐까. 앞서 말한 '평등', '형평', '공정', '공평'은 사실 상호보완적이지도 않고 동시에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극단적으로는 현존할 수 없는 개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유토피아 (그리스어의 'ou 없다' + 'topos 장소')처럼. 누구나 바라지만, 다다르거나 절대 가볼 수 없는 곳.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서 무기력하게 살아 숨쉬기만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단다.
사람들은 유토피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갈구하며 살듯이. 정의롭지 않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 하나라도 무언가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그나마 그게 희망의 실마리 아닐까.
마음 단단히 먹길 바란다.
지금은 그 말 밖에 해줄 수가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