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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an 15. 2024

세상의 거절을 거절하기로 한다

어른이 되면서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굳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할 것이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태어난 그 자체로 인정받는다.

말을 하지 못해도, 잘 걷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웅얼웅얼하거나 금세 넘어질 몇 걸음을 걷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환호하며 용기를 북돋는다. 세상 가장 효용 가치가 없는 존재. 그저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데에도 인정받는 그 시절은 삶에 있어 다시 오지 않을 기적의 순간이다.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개탄스럽다. 인생에, 앞으로는 절대 없을 그 시간을 기억할 수 없다는 건 신의 장난 같기도 하다.


아마도 우린, 그때 평생의 인정을 다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로부터 한 두 살 먹어갈수록, 인정받을 일은 현격히 줄어든다. 왜일까. 남을 인정하면 안 되는 사회적 분위기와 강압에 의해서다. 경쟁해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유치원부터, 아니 누구는 몇 살에 걸음을 떼었네 말을 하기 시작했네... 비교가 되는 그 시점부터 남을 인정하기보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골수에 차올라 저도 모르게 체득화된다. 집단 무의식의 힘이다. 태초의 사람에게서 전해져 오는 본능이기도 하지만, 한국이라면 그 정도는 더 심하다. 우리네는 뭐든 빨리, 잘해야 하는데 문제는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지 않고 빨리, 잘한다는 것이다.


때로 나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것은 마치 세상에 거절당한 것 같단 느낌이 든다.

거절당한 느낌은 더럽다. 어른이 되면서 거절당하는 횟수는 더 많아지고, 많아지는 횟수만큼 기분은 더 더럽다. 내가 뭐 그리 잘못했을까. 잘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그리 못된 건 아닐 텐데. 세상은 내가 한 노력에 배신으로 화답하고, 계획한 대부분의 것은 수포로 돌아가게 한다. 아, 약 오르다. 누가 설계한 판인가. 왜 태어났는지가 아니라, 태어났기에 의미가 생겼다는 어느 현자의 말. 그러니까 왜 태어났는지에 골몰하지 말고 태어났으니 의미를 찾으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사실, 이런 말장난 같은 문장에 피식 웃고 말곤 했으나, 삶의 거절을 무척이나 많이 당하고 보니 어쩐지 그 말이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오늘 일어난 문제는 내가 지금처럼 생각해 왔고,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보면.

변화의 시작은 참으로 쉽다. 살아왔던 것처럼 살지 않는 것. 생각해 왔던 것을 뒤집는 것.


고로, 나는 세상의 거절을 거절하기로 한다.


그저 투정 섞인 거절이 아니다.

나만의 의미를 찾아 거절하는 것이다. 어떻게? 바로... 세상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면 그저 기분 더러웠던 수준에서 더 나아가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방법이 세상의 거절을 거절하는 방법이고, 이를 통해 어쩐지 나는 한 뼘 더 자란 느낌이 든다. (기분이 덜 더럽다...)


거절당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

인정받지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것.

거절당하고 인정받지 못해 기분 더럽다는 걸 인정하는 것.


오호라.

이처럼 마음이 편해짐을 느낀 게 얼마만인가.


신에 대한 불만, 삶에 대한 부조리, 내 맘과 같지 않은 타인에게 삿대질하고 멱살을 잡아봤자 괴로운 건 나 자신이다. 인정받지 못했다고, 거절당했다고, 기분 더럽다고 소비한 시간들. 부정하느라 소모한 감정들. 끈적한 것이 묻어 조급하게 닦아내려다 더 지저분해지는 어리석음.


나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꽤나 멋진 거절이라는 걸 요즘 나는 깨닫고 있다.

편해지는 건 내 마음이고, 삶은 좀 더 편해진다.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어른이 된 것도 그리 통탄할 일만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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