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三災)를 믿지 않기로 했다.

by 스테르담

어느 때라고 밝히고 싶진 않다.

때를 밝히고 글을 쓰면, 내 나이와 띠가 들통날 것이기에.


어찌 되었건 아주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던 때가 있었다.

뭘 해도 안되고, 안 해도 안되고. 가만있어도 무언가 꼬이는 그러한 형국이었다. 직장에서는 평판이 바닥을 치고, 무얼 해도 욕을 먹고. 퇴근 후의 시간도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그저 세상과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할 수밖에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다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이거... 혹시 말로만 듣던 삼재가 아닐까?


나는 점(占)을 대체로 믿지 않는다.

사주(四柱)도 마찬가지다. 어찌어찌하다... 어찌어찌 될 것이다... 란 말을 들으면 확증편향과 합리화에 따라, 사람은 그리 되는 길로 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좋은 소리는 금세 잊히기 마련이지만,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오히려 거기에 온 신경이 쓰이고 마는 게 사람의 습성이다. 고로, 나는 신문의 운세도 보지 않는다. 괜한 소리가 머리에 맴돌아, 사사건건이 신경 쓰이게 되고 주체성을 잃는다는 느낌이 싫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한 동물.

도대체 알 수 없는 고난이 오면, 사람은 종교나 사주와 같은 본인 의지 범주의 밖에 것을 찾기 마련이다. 시기가 맞아떨어져서일까. 내 책을 읽어 주시고, SNS로 소통하던 사주 전문가가 계셨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분이기도 했고, 늘 진솔한 글을 꾸준히 올리시는 분이었다.

아, 이분이라면 사주라기보단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예약을 하고, 그분을 찾아갔다.

처음엔,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생년 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말씀드렸다.


어? 자기 손으로 우뚝 서서 살아가시는 분께서, 얼마나 힘들면 여기까지 오셨을까?

그분의 첫마디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내 정체는 곧 들통났다.

내가 티를 낸 것 반, 그분께서 잽싸게 알아차리신 것 반.


스테르담 작가님, 지금 삼재네요. 삼재엔 '들재', '눌재', '날재'가 있어요. 지금은 '눌재'기간이네요. 그러니까 삼재가 들어오고, 눌리고, 날아가는 단계 중 가운데 계신 거예요.

과연 이해가 갔다. 말로만 듣던 삼재를 나도 당하게(?)되는구나...

내년 '날재'엔 삼재가 떠나면서 조용히 갈 수도, 아주 지랄을 하면서 나갈 수도 있어요.


삼재에 대한 상세 내용을 그때 알았다.

이후, 우리 이야기는 글쓰기부터 인생, 삶의 전반적인 것까지... 무려 3시간의 시간을 열렬히 진중한 대화로 나눴다. 누군가와 이렇게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이야기까지 꺼내어 순조롭게 대화를 한 건 처음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분께서는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기도 해주시겠다고 했다. 감사함을 전했다. 시간이 초과되었지만, 추가 비용은 받지 않는다고 하셨고 나와 대화 한 시간이 그분께도 무척이나 소중하고 감사했다고 했다.


그 이후.

나는 갑자기 멕시코 발령이 나, 급하게 멕시코로 날아갔다. 나는 기대했었다. 아, 삼재가 지나갔으니 이제 좋은 날만 이어지는 건가?...... 는 개뿔. 두 번째 해외 주재 생활이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매해 (예상치도 못한)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에...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기에 입에 담기도, 글로 표현하기도 싫다. 업무도 주머니 속 이어폰 줄처럼 베베꼬였고, 휴대폰과 지갑을 동시에 잃어버린 일도 있었다. 인간관계 또한 손절과 싸움으로 얼룩지기도 했다.


매해가 삼재구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 힘들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내일은 더 힘들 테니까... 란 말을 늘 마음에 품고 출근했다.


결국, 나는 삼재를 믿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매 해가, 매일이 삼재라 생각하기로 했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삶은 고통이다. 그러나 사람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동물이다. 행복이 지속되면, 잠시라도 부족한 것에서 불행을 느낀다. 즉, 행복하면 불행을 느끼고, 불행하면 희망이란 기회를 두 눈 부릅뜨고 찾게 된다.


'삼재가 지나면 다 괜찮아지겠지...'란 생각 자체가, 오히려 고통을 불러온 꼴이 된 것이다.

때로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란 생각을 한다. 나를 '0' 또는 '무(貿)'라고 생각하면, 그 어떤 절망과 고통이 와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게 된다. 극도의 행복이나 기쁨이 와도 마찬가지다. 애매한 경계에서, 중용의 덕을 쌓아 올려야 삶의 희로애락, 특히 고통이나 절망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더불어, 지극히 개인적인 방법이다. 삼재를 믿지 않는 것, 삶은 고통이라는 것. 인생의 아이러니함과 부조리, 역설을 나는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고통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행복에 취해 조금이라도 불행해질까 벌벌 떠는 것보단 낫다. 행복은 늘 '순간'이다. 순간에 얽매이는 순간, 절망과 고통의 고속도로에 올라서게 된다. 삶은 고통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희망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좀 더 간절히 찾아낼 수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하며.

죽음이 있기에 삶은 온통 의미로 가득하다.




나는 요즘도 운세에 별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삶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나는 믿는다. 아니, 깨달았다. 예측하고 예견하려 했던 삶이 오히려 더 불행했다.


다만, 내가 더 힘써야 할 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내 대응법은 달라진다. 설령,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운'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라 해도 나는 두렵지 않다. 대응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건 받아들이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나의 대응법인 것이다.


혹시나, 삼재를 지나고 있을.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분들께... 소소하지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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