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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04. 2024

목욕탕 (사무치게)가고 싶은 날

<스테르담 에세이>

힘들고 지친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다음 세 가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첫째, 가족

둘째, 바다

셋째, 목욕탕


가족의 위로와 바다의 효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나는 목욕탕이 너무나도 가고 싶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요즘 나는 마음이 너무 힘들고 온몸을 뜨끈하게 담글 욕조가 이곳 멕시코 집에는 없다는 것이다. 힘든 마음을 꺼내어 물에 담글 수 없으니, 몸이라도 담그면 기분이 좀 나아짐을 느끼며 마음의 때를 벗겨내는 의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목욕탕은 예전에도 내게 큰 위로였다.

힘든 군대 시절, 휴가를 나오면 어김없이 나는 공중목욕탕으로 향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난 옛날이니, 당시 목욕탕 감성을 공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온탕, 열탕, 녹차탕. 나는 주로 열탕으로 먼저 향했다. 점점 차오르는 물이 뜨겁고, 살갗이 벌겋게 달아오르지만 개의치 않고 목까지 담가 고개를 뒤로 하고 눈을 감으면,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군대에서 받은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에 가해진 상처와 아픔까지도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491835


아들 둘을 데리고 간 목욕탕도 나에겐 감동이자 위로였다.

등의 때를 밀어줄 정도로 자란 아이들을 데리고 간 목욕탕의 그 추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버지 없이 자란 내가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고, 아이들은 내 등을 밀어주고 있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눈에 살짝 흐른 눈물을 아이들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해보고 싶은, 목욕 후 아이들과 바나나 우유를 먹는 추억도 눈물의 어느 일부였다.


목욕탕을 가지 못할 땐, 한국 집 욕조에서 몸을 담가 몇 시간이고 있었는데.

해외 주재하고 있는 이곳 멕시코에서, 나는 한국에 대한 그리움보다 목욕탕에 대한 향수를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아, 이것 또한 본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라면 향수랄까.


공중목욕탕의 감성과 그 위로가 나는 오늘 너무나도 사무치게 그립다.

마음이야 어느 정도 달래지고 무뎌지겠지만, 몸은 여전히 열탕에 푹 담기고 싶은 열망을 내비친다. 한국 출장을 가게 되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목욕탕으로 달려가려 한다. 지금은 많이 없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분명. 반드시. 꼭.


목욕이 끝나고,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고생한 나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을 또 이렇게 잘 버텨내야지.


목욕탕을 사무치게 가고 싶은 어느 날.

글이라도 쓰며 달래는 아쉬움이 쉬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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