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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06. 2024

건물주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

<스테르담 중년과 에세이>

직장에 당찬 후배가 있었다.

그 어떤 일에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일의 성과가 그에 비례하진 않았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무언가 대충 산다는 느낌마저 들었었는데, 일을 대충 했다기 보단 직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 그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그러니까 크게 흔들리지 않고 대충대충 대했던 기억이 난다.


과연, 그러한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후배지만 초연하면서도 덜 흔들리는 그 친구를 보면 내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후배는 회사에 퇴사를 고했다. 자신감으로 승승장구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를 것이라 내다봤던 후배의 퇴사가 나에게는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갑작스러웠다. 그러나, 후배의 얼굴은 태평해 보였다. 퇴사는 당장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이나 이직에 대한 불안함으로 다소 상기되어 있어야 하는데. 나라면 그럴 텐데, 그 후배의 자신감은 퇴사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작동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후배의 퇴사 사유와 그동안 나에게 자극을 주었던 자신감의 원천을 알게 된 후,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건물의 임대업을 위해 퇴사를 한 것. 갑자기, 지난날 모든 순간 발휘되던 후배의 자신감이 속성으로 이해가 되었다. 깔딱깔딱한 직장인의 호흡 속에, 유난히도 초연하고 긴 호흡으로 임했던 후배. 이리 깨지고 저리 깨져도 너는 짖어라, 나는 내 할 일 한다라는 위풍당당했던 그 기세는 결국 건물로부터 뿜어져 나온 것이었다. 그간 비밀로 해왔던 출생의 비밀(?)을 나에게만 풀어놓으며, 후배는 나의 건승을 빌어 줬다.


나는 후배 녀석의 건승을 빌어 주지 못했다.

자고로 세상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과 건물주 걱정이므로.


자산이 자신감이 되는 시대다.

시대적 해석에 나를 갖다 놓으면, 내 자신감은 아마도 바닥을 조금 벗어난 수준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돈보다 소중하다는 옛적 가치관을 적용해 자신감을 키워보려다가도, 오히려 더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러지 않기로 한다.


초라해지는 나를 더 초라하도록 내모는 생각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건물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그렇다 치고, 나는 왜 우리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까? 아마도, '좋은 아빠'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 아닐까. 건물 하나 없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워, 그 울화를 미안한 마음으로 전가려는 건 또 아닐까.


비교는 불행의 씨앗이란 걸 알지만, 내 월급의 몇 배를 월세로 받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작아진다.

저 멀리, TV에서나 보던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바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 내 마음은 쉬이 요동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지, 일하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지 중얼거리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말 그대로,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헛 주문을 외우기보단 부러운 건 그저 부럽다고 한 번 소리쳐 본다.

소리치고 소리치고 또 소리치다 보면, 결국 변하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세상이나 지금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그 순간의 자각은 무기력하지만, 실로 가장 현명한 체념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주저앉을 것이냐, 더 나아갈 것이냐.

결핍의 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 남은 삶이 바뀌게 될 것이다. 건물을 대상으로 한 결핍이라면, 그 정도가 조금 세긴 하지만 언젠가 나도 건물주가 되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라며 위로와 다짐을 동시에 해본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먼 앞날을 위한 다짐보다, 당장 고픈 배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에 전념해야지.


아이들에게, 물려줄 건물이 없어 미안한 마음은 잠시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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