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직장인 심리 카페>
스테르담 '직장인 멘토링' 의뢰 내용을 정리하여 연재합니다.
Q. 저희 부부는 두 돌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습니다. 맞벌이하는 실정에 아이를 위해 많은 시간을 같이 못 보내는 만큼 몬테소리, 홈문센 등 프로그램을 시키고 있는데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5시에 퇴근하더라도 간신히 도착하는 상황이다 보니 업무와 가정 사이에서 아빠로서 양립하기 너무 어렵고 힘듭니다. 현실적으로 외벌이는 생각조차 어려운데 맞벌이 선배들은 어떻게 멋진 멋진 부모로 살아오신 건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질문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짠하고, 그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동시에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낸 걸까... 머릿속 영사기를 돌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있고, 저는 그 이상으로 나이 들어 있었습니다. 분명 많이 고단하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왜 기억이 안나는 걸까요.
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질문자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왜 맞벌이를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산업화가 태동한 1960년대 우리나라 맞벌이 비율은 15.4% 수준이었습니다. (출처: KOSIS 국가통계포털) 1990년 50%를 지나 지금은 약 70% 수준입니다. 맞벌이 비율 증가의 배경엔 산업화, 도시화, 여성 교육 수준 향상, 사회 인식 변화, 양성평등 증진, 편의시설 확충 등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확실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바로 경제적 이유입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고,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의 속도를 추월하면서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란 녀석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현재 임금 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353만 원입니다. 단순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4,300만 원 수준인데요. 서울 아파트 평균값은 약 13억 원(한국감정원 조사 기준)입니다. 그렇다면 서울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손에 놓으려면 숨만 쉬며 30년 월급을 꼬박 모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시대는 부유하나, 개인은 힘겨운 시대. 밥 굶는 일은 없지만, 늘 무언가 공허한 시대. 이러니 맞벌이를 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선진국들의 '동거 문화'는 여기서 한발 더 앞서 나간, 결혼을 생략한 맞벌이의 또 다른 진화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응답하라 1997이란 드라마를 보면, 우리 아버님들 세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팍팍했지만 외벌이로도 충분했던 시절. 단칸방 하나에서 시작하더라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던 시절.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시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세대'를 포괄합니다. 그러니까 '새대'는 '시대'에 종속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생존 방식을 바꾸는 것이 바로 '세대'라는 것입니다. 앞서 질문자님께서는 맞벌이 선배들이 다들 어떻게 그렇게 멋진 부모로 살아온 건지 궁금해하셨습니다. 저도 조금은 먼저 그 힘든 시간을 지나온 선배로서 말씀드리자면, 주어진 시대와 개인의 상황에 그저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치열하게 그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 고단함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맞벌이가 필수인 시대.
업무와 가정사이에서 좋은 부모로 양립하기 어려운 시대.
그러니까 질문자님의 고민은, 질문자님이 부족하거나 질문자님의 역할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고로, 자책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합계출산율 0.72명인 이 시대에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한 가지 고무적인 건, 그래도 질문자님은 오후 5시에는 퇴근하실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계시다는 겁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그 상황에 감사하며 지금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길 응원합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어느 후배가 대체 어떻게 아이를 키워냈냐고 질문자님께 묻는 날이 온다면 저처럼 무책임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지 마시고 정말로 좋은 노하우를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P.S
고단한 시간이었지만,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커 가는 아이들의 웃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백 번의 고단함도, 아이들 한 번의 웃음에 한 여름 아이스크림 녹듯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지금 질문자님의 시간이, 영롱하게 빛나는 그리운 날로 기억될 그날이 꼭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