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May 26. 2024

운전과 운(運)의 상관관계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운전을 하다 보면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갈 때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기란 삶의 어느 순간을 통틀어 그리 많지 않다. '운이 좋다'란 탄식 아닌 탄식이 새어 나오는 이유다. 


과연 그렇다.

도로 위 교통 체증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아무리 비싼 차도, 아무리 싼 차도. 물리적 시공간에 속해있다면, 프로펠러나 날개가 달려 수직으로 이륙하여 날아갈 수 없다면, 교통 체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된다. 그런데, 어느 차들은 내 차선보다 빨리 가고 또 어떤 차들은 신호에 덜 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최악의 교통 체증 안에서도, 누군가는 나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왜 내가 선택한 차선은 늘 이모양일까.



'운전'과 '행운'의 '운(運)'자는 같다.

운전한다, 옮긴다...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엔 각자의 핸들이 달려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동차를 인생에 빗대는 이유다. 도로 위 차들은 각자의 우리다. 객체이자 존재다.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하며 아웅다웅하는 것이, 인생 그 자체다. 고로, 도로 위는 우리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서두로 돌아가,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달려 나가는 것을 두고 '운이 좋다'라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엔 그랬다. 다른 차는 나보다 더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타이밍'이란 말로 삶을 판단한다면, 운은 분명 있다고 본다. 그런데 하나 깨달은 건, 운은 쟁취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란 것이다. 그것도 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늠한다면, 운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 결론 날 확률이 높다. 신호등에 하나도 걸리지 않고 질주하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훨씬 더 많으며 그것이 우리네 일상이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는 건, 나에게 일어난 일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잘 받아들이면 행운.

그러하지 않으면 불운.


운에 대한 주체성을 늘 하늘에 맡겼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잘 받아들이면 행운의 기회는 늘어난다. 그러하지 않은 것들도 행운으로 바꾸는 능력이 생긴다. 마음의 핸들을 어디로 트느냐에 따라, 내가 가는 길 위엔 행운이 더 가득할 수 있다. 핸들이 있다면 엑셀도 있고 브레이크도 있을 터. 목적지에 잘 다다르려면, 속도를 줄이거나 때론 정지해야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후진까지.


브레이크 한 번 안 쓰고 질주하여 목적지에 다다르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 아니 착각한 지난날이 아깝다.

그때의 내가 안쓰럽다. 운은 언제나 내 마음에 있고, 운전석에 앉아 삶을 한탄하기보단 나에게 주어지는 신호등을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운은 내 탓이 아니고, 신호등은 안전과 질서를 위한 것이니. 맥락의 눈을 열어 전후상황을 잘 살핀다. 


운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란 거만한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운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란 말은 분명히 하겠다.


운이 좋고 나쁨에 대한 한탄은 줄이고.

주어진 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는 마음속 핸들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종합 정보]

스테르담 저서, 강의, 프로젝트


[신간 안내] '아들아, 나는 너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미워도 경적은 (짧게) 한 번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