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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02. 2016

하노버에서 아침을

시간을 달리게 하는 매력, 독일 하노버


- 여정 -

네덜란드 To 하노버 (380km, 1박)
하노버 To 슈베린 (254km)
슈베린 To 함부르크 (111km, 1박)

함부르크 To 네덜란드 (472km)



이유는 몰랐다.


언제나 그렇든 가족 여행은 갑작스러웠다. 물론, 갑작스러운 가족 여행은 나의 스트레스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였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니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제한적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더 다양했다. 사실, 먹는 걸 가장 우선으로 했었지만 망가지는 몸매에 부담을 느껴, 어느새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 나에겐 가장 큰 힐링이 되었다. 나에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자, 와이프와 아이들에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니 이보다 더 좋은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을 수 있을까.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일요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언질을 와이프는 가벼이 넘기지 않았다. 그리곤 어느샌가 여행 일정이 완성되어 있었다. 언젠가 내가 독일 어딘가를 가고 싶었다고 했던 것 같다. 큰 나라 독일이지만 각각의 도시와 소소한 마을들이 참 좋았었나 보다. 결국 왜 하노버인지, 슈베린인지 그리고 함부르크인지는 몰랐지만 금요일 늦은 오후에 우리는 그저 출발했다.




금요일 저녁을 달려 도착한 하노버는 어둠에 싸여 있었다. 비가 부슬댔다. 이미 와버린 가을은 겨울을 재촉하는 듯했다. 가을이란 녀석은 자신의 존재에 그리 미련이 없다. 항상 그렇게 낙엽을 물들이고 떨어뜨리고는 겨울 뒤로 잽싸게 숨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 일지 모른다.

오랜 운전 끝에 도착한 숙소에서 몸을 뉘었다. 스트레스와 장시간의 운전은 괜찮은 조합이다. 스트레스라는 정신적 피로와 운전이라는 육체적 그것이 어우러져 나에게 깊은 잠을 선사했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왜인지 모르지만 '문리버' 노래가 머리에 맴돌았다. 어느새 부턴가 아침에 일어나면 어떤 노래가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재밌는 건, 정말 내가 의도하지 않은 노래들이 생각난다는 것. 그 날 아침의 '문리버'도 나에게 생뚱맞았다. 그리곤 이유도 모른 채 하루 종일을 흥얼거렸다.


하노버에서 아침을


할리 고라이틀리 (오드리 헵번)는 속물이다. 현실은 너저분한 작은 아파트지만, 일상은 뉴욕의 화려한 거리에서 커피와 크로아상을 들고 티파니 매장에 진열된 보석을 구경하는 것이다. 삶의 목표 또한 그리 고결하지 않다. 부자인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꿈꾸는 비루한 캐릭터의 절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천박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우아하고 감성적인 면을 부각하며 결국엔 진정한 사랑을 찾게 만든다. 어쩌면 천박한 것이 답일지 모르는 이 험한 세상에 그리 영향력 없는 신파의 외침일지언정. 감독의 의도는 '그녀'는 곧 우리이고, 우리는 천박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이상'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 했는지 모른다. 즉, 우리는 그리 천박하지 않고 우아한 존재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든 말이다.


어쩌면 힘들고 고된 내 마음과 정서가, 그래서 '문리버'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그곳이 뉴욕이든 티파니든, 아니면 전혀 상관없는 하노버이든. 잠시 지긋지긋한 현실을 잊고 '어딘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던 듯. 현실을 도피할 용기는 없으니, 다른 어느 곳에서의 낯선 아침으로 그것을 대신하길 바라면서. 생뚱맞게 하노버. 어쩌다 보니 '하노버에서 아침을.'


첫 인상. 역시 낭만과는 거리가 먼.


호텔을 나서 처음 본 건 '문리버'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한 자동차 회사 로고가 박힌 큰 타워였다. 첫인상이 그런 터라 메세(박람회)의 도시 베를린이 생각났다. 실제로 하노버는 큰 규모의 박람회가 활발히 열리는 곳이다. 어째 이런 곳에서 '문리버'가 생각났을까. 장소의 사유가 아니라, 그저 내게 필요한 위로의 노래였던 것이 분명하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호텔에서 도시 중심부로 이동하는 길엔, 언제나 중앙역이 있다. 중앙역은 어디든 그 분위기가 비슷하다. 수많은 목적지로 향하는 게이트와 가지런한 번호들. 그 가지런함 속으로 오가는 분주한 사람들. 출발과 도착의 무한 반복 속에 사람들은 존재한다.

어디론가 분주한 사람들. 중앙역의 풍경.
Ernest Augustus Monument


시간을 달려서, 하노버 속으로


하노버 중앙역을 나와 걷는 길은 독특하다. 지상의 길과 함께 지하의 길이 그 방향을 같이 한다. 청계천과 비슷한 구조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 물이 아닌 상점들이 즐비하다. 현대적인 느낌의 이곳은 하노버가 대도시이며, 산업의 중심지란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전략 도시라는 이유로, 88번의 폭격을 맞은 도시답게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산업적인 요소'를 뒤로하고 어느 한 광장의 '시계'를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크뢰프케'는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시계지만 하노버의 역사 속으로 안내하는 초입과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안내하는, 시간의 경계인 토끼굴과 같은 곳이라고 해도 좋다. 이곳을 기점으로 '산업적이고 현대적인' 이미지는 '오래되고 중세적인' 것들로 바뀌기 때문이다.

도심가. 길을 따라 지상, 지하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새롭다.
Kröpcke-Uhr를 기점으로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크뢰프케를 지나 얼마 되지 않아 맞이한 것들의 모습은 역시나 시간을 지나쳐 온 그 느낌이었다. 시간을 달려 세월을 느낄 수 있는. 신시청사가 세워지기전까지 하노버의 행정을 책임지던 Altes Rathous는 그 독특한 양식과 함께 세월의 흐름을 몸소 이야기하고 있었다.

Altes Rathaus 구 시청사
구 시청사는 마르크트 교회와 나란히 위치해 있다.


구 시청사 부근의 작은 분수를 지나면 보이는 큰 교회. 그 교회를 잘 설명해주는 한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동상의 장엄한 포즈와 함께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은 바로 '마틴 루터'. 종교개혁의 장본인이자 역사적이며 세계사 시험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영향력으로 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대의 어느 변화를 이끈 정도로보면 요즘의 페이스북, 구글의 창업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마틴 루터 동상의 위용


시간이 좋았다. 미사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웅장하고 큰, 그러나 어쩐지 고요한 오르간 소리가 교회 내로 울려 퍼졌다. 화려한 연단을 뒤로하고 바라 본 뒤편은 한가운데가 아닌 왼쪽에 오르간 파이프가 있었다. 뒷모습으로 자신의 재능을 하늘 위로 바치는 한 연주자의 경건함이 묻어 나왔다. 그 경건함은 오르간 파이프를 타고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깊숙이 전해졌다.

크기는 뒤로하고, 입구의 모습이 세월의 깊이를 말해준다.
교회의 앞 연단은 화려하다. 경건할 정도로.
왼쪽에 오르간이 위치해 있다.
마침 오르간 연주가 한창이다.


교회를 나와 다시금 더 깊은 시간 속으로 걸어가 본다. 오래된 건물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덜 오래된 그리고 더 오래된 건물들이 마주 보며 시간의 순서를 잊게 만든다. 어느 한 건물은 온몸으로 가을을 표현하기도 하면서. 유럽의 길을 걷는 것은 그래서 흥미롭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는 느낌도 좋고 양쪽으로 내가 더 오래되었다는, 또는 내가 더 독특하거나 이 지역의 특색을 잘 나타낸다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여행자를 흐뭇하게 한다.

몬샤우를 떠올리게 하는 양식의 건물. 그리고 덜 오래된듯해 보이는 붉은 색 건물과의 조화.


더불어 맞이하는 이름 모를 교회와의 조우는 소소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유럽이라면 특히 더 그렇다. 세월의 깊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저곳의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시간을 말해준다.

첨탑이 남다르게 멋있었던 어느 한 교회
입구에 위치한 창문 하나. 들어오는 빛의 환함이 어쩐지 신성하다.
교회로 들어가는 문의 손잡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생각난다.


교회를 지나 걷던 골목에서 뒤돌아 그 교회를 다시 보면 주변 건물과 어우러진 모습이 다채롭다. 지나던 어느 한 집의 화분 하나를 기점으로 바라본 주변도 아름답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유럽, 독일의 거리는 그렇게 매력적이다. 하노버라는 이름에서 기대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발견. 어째 점점 빠져드는 느낌이다.

교회를 나서 걸어가다 다시 뒤돌아 본 풍경.
어느 한 집의 창가에 놓인 화분. 별거 아닌 것에 좋아지는 기분은 여행자의 권리이자 기쁨이다.
근처에 위치한 Bollhof 분수


하노버의 절정, 후회하지 않을 그 두 곳


별 의미 없이 지나칠뻔한 Aegidienkirche. 그저 그 흔한 오래된 교회이겠거니 했다. 더불어 첨탑만 보고는 됐다, 시청사나 보러 가자 했던. 하지만 다가가지 않았다면 꽤 오랜 기간 동안 후회했었을 듯싶다. 정말 하노버에서 보게 된, 그리고 느끼게 된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다. 폭격을 맞은 교회. 없어진 지붕. 남아 있는 외벽. 그래서일까. 안으로 들어서면 더욱더 숭고해짐을 느낀다. 신도 전쟁을 막지 못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그대로 용인한 것인가. 신성한 교회도 무너질 수 있음에 과연 신이란 존재하는지, 아니면 존재하되 우리 삶에 관여를 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살아생전에 계속될 것 같다. 안으로 들어서면, 초라하게 남은 외벽을 양 옆으로 하고 앞과 뒤에 보이는 풍경이 심상치 않다. 지붕이 있었다면 없었을 알록달록한 덩굴 가지가 전면을 덮고 있고, 십자가가 홀로 서 있는 뒤편의 연단엔 누군가가 놓아둔 꽃이 빗물을 머금고 누워 있다. 기도하는 자의 형상은 숭고하며 바닥에 놓인 낙엽들은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내뿜는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이 하노버에서 맞이한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어느 하나의 교회.
다가가면 그 상처가 보인다.
지붕이 있었다면 없었을 알록달록한 덩굴가지.
뒷편에 보이는 십자가.
십자가 뒤에서 바라 본 전경.


Aegidienkirche를 지나치지 않고 보길 잘했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시청사로 향했다. 사실, 하노버에서 맞이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풍경들은 하루 종일 걷게 된 두 다리를 가볍게 했다. 와이프와 아이들도 힘든 내색이 거의 없었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상쾌한 공기를 선사했고, 약간 쌀쌀한 날씨는 걷는데 지치지 않도록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시청사.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모습이 심상치 않았고, 다가올수록 느껴진 느낌은 재밌게도 '잘생겼다'라는 느낌. 시청사라고 생각하기엔 믿기지 않는 비주얼, 그리고 실제로 저기서 공무원들이 일을 할까...라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일반인 및 관광객에게 개방하는 그 여유도 우리네에겐 그리 익숙한 것이 아니다. 실내로 들어서면 마치 미녀와 야수가 손을 잡고 내려와 춤을 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궁전과 같은 곳. 어떠한 정서가 그렇에 다른지 몰라도, '다른 나라, 다른 도시'를 넘어 '다른 세상'사람들의 이야기인 것만 같다. 당장,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시청사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그렇다. (물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동경을 하자는 건 아니다. 부럽긴 하지만. 뭐, 그렇다는 거.)


다시, 하노버에서 아침을. 하노버에서 가을을.


기대한 바가 없어서일까. 사실, 하노버는 슈베린과 함부르크를 잇기 위해 넣은 하나의 동선이었다. 하지만 하노버가 내게 준 그 무엇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맞이한 할리가 잠시라도 현실을 잊고 향유한 '이상'이라는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곤하고 스트레스에 절었던 비루한 몸과 정신은, 하노버에서 시작한 아침으로 크게 위로받았다. 게다가 시간을 달려 느꼈던 하노버의 시간 여행은 더 없는 추억이었다. 그 시간여행과 더불어 맞이한 곳곳의 계절여행도 또 하나의 백미. 곧 초겨울 뒤로 숨어버릴 가을이라는 녀석이 선사한 선선함과 촉촉함. 그리고 다양한 색의 화려한 향연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가족이라는 여행의 영원한 여정에 선명한 어느 하나의 추억으로 말이다. 하노버에서의 아침. 그리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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