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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15

[너를 만난 그곳] #4. 내 가족의 기억 Part 1

어이없는 불평을 간혹 하늘에 쏘아대기도 한다

- 1 -


가족 이야기를 하면 나는 한없이 초라해진다. 내세울 만한 게 없다.

그저, 내 꿈이 일찍 가정을 꾸려 평범하고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는 것은, 그러지 못한 결핍의 반증일 것이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누나는 대학 진학에 실패한 후 방황을, 어머니는 우리 둘을 키우느라 집에 거의 없었으며, 그렇게 살다 보니 친척들과의 왕래도 없었다.


- 2 -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나의 기억은 5살 때부터 흐릿하게 떠오르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신동으로 태어나 1살 때부터 모든 것을 기억할 걸 그랬다. 물론,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아버지를 일찍 데려가실 거 그런 능력이라도 좀 주시지 그랬냐는 어이없는 불평을 간혹 하늘에 쏘아대기도 한다.


- 3 -


간지럽게, 그러나 나른하게 잠들라고 귀를 만져 주신 것.

자동차를 좋아하는 내게 포니 2를 그려주며 색을 칠해보라고 하신 것.

누나와 싸운 후 웅크리고 잠든 내게 이불을 덮어 주신 것.

그리고 놀이 동산에서 놀이기구를 더 타고 싶다고 떼쓰는 내게 인자한 얼굴로 웃으시며 달래던 그 모습.

이것이, 내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 4 -


어머니는 전형적인 사모님이었다.

건설사의 임원이셨던 아버지 때문에도 그렇고, 한 때 부유했던 외가의 영향으로 손에 물 한 방을 묻히지 않고 살아오셨다.

어머니는 내가 봐도 아름다웠으며, 곱게 자라 그런지 무척이나 긍정적이셨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10살이 나긴 했지만, 어렴풋한 어린 기억에 우리 집은 무척이나 화목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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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격하게 나빠졌다.

예상치 못한 뺑소니 교통사고.

80년대 초반 CCTV는 있을 리 만무했고,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린 두 남매의 손을 잡고 강남에서 경기도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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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직업은 사모님에서 식당 보조, 여관 카운터 아줌마로 바뀌었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집에 거의 안 계셨고 두 남매를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다.

가사 도우미를 쓰던 분이, 가사 도우미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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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일하시던 여관에서, 나는 주인집 아들 녀석에게 과외를 해줬다.

그리고 때로는 어머니와 함께, 손님들이 남기고 간 맥주병을 슈퍼마켓에 팔곤 했다.

수입은 꽤 짭짤했다. 그리고 난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두 남매를 키워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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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안계셔서 불편한 것은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았다.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못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긍정적인 가르침으로 나를 복돋아 주셨기 때문이다.

다만, 고등학교 교복의 넥타이 매는 법을 친구한테 배운 것, 남들 다가는 어학연수를 못 갔던 것, 매 학기 등록금 걱정을 했던 것과 장래 희망, 꿈, 경제 관념에 대해 일찍이 이야기를 못한 것들은 끝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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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방황은 더해만 갔다.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에서 대학에 실패하고, 자존심이 있어 곧 죽어도 전문대는 안 간다고 했다.

요즘 세상이야 전문대가 오히려 취업률로 각광을 받지만, 당시는 그런 분위기가 있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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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고졸로 누나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곳은 백화점.

없는 형편에 눈은 높아만 갔고, 명품을 팔려면 자신이 명품을 차고 입고 있어야 한다는 자기합리화에 빠져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 진학에 실패한 열등감과 한창 꾸미고 캠퍼스를 누려야 할 나이에 일을 하는 자신에 대한 보상심리로 과소비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과소비는 나에게 너무나도 과한 사건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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