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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26. 2015

[너를 만난 그곳] #5. 내 가족의 기억 Part 2

가난하고 못난 가족을 선택한 당신이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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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토익 공부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교 4학년 1학기.

아침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돈을 갚으라는 카드사의 전화였다.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된 독촉 전화는 그 날 오후까지 다섯 통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섯 통의 전화는 내게 웬만한 집 전셋값을 내놓으라고 했다.

난 신용카드를 만든 적도 없고, 그렇게 큰 돈을 쓴 적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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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과 같은 그 사건은, 신용카드가 막 도입되어 이를 장려하던 정부와, 개인의 방황을 과소비와 사치로 승화시킨 누나의 합작품이었다. 그리고 난 애꿎은 피해자였다. 너무나도 억울한 피해자.

차라리 그 돈을 내가 썼더라면, 어학연수라도 다녀왔거나 내가 사고 싶은 것을 다 사고 나서 이런 일을 당했더라면 덜 억울했을까. 게다가, 사기꾼한테 걸렸다면 달려가서 죽이든 살리든 고소를 하든 어떻게 했겠지만, 가족이 그랬다니 다만 억울하고 또 억울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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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인생, 이러한 일은 대체 왜 일어나는 지.

밑바닥이 아닌 마이너스로 시작해야 하는 내 자신이, 우리 가족이 정말 불쌍했다.

더 이상 화도 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던 누나의 모습이 불쌍하고 이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바라보시는 어머니도 불쌍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했던 내 자신이 참으로 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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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려 했던 못난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태어난 나는 참으로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나갔다.

누나도 다행히 좋은 매형을 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을 얻어 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은퇴(?)하셔서 누나 집에서 손녀를 키우시며 지내고 계신다.

손녀 키우는 것이 여러 일을 하는 것보다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여느 할머니처럼 손녀바보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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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어떻게 이렇게 그래도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가족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렇게 밝지만은 않다.

다른 사람들, 다른 가족들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 나름대로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며, 내 누나와 같이 집안 내에서 사고 아닌 사고를 치는 사람은 분명 한 명 이상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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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부모 잘 만난 친구, 전문직에 종사하는 형제를 가진 친구들을 보면 한 없이 초라해지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들곤 했다. 이내, 그러한 감정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고 이겨내려 노력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런가. 빽이 없으면 살아가기 정말 힘든 세상이고, 개천에서 용은 나오지 못하는 시절이다.

이렇게 내 마음 한편에는 부르주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투와 원망이 자리 잡은, 프롤레타리아의 그것이 멍자욱처럼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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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은 이렇게, 나에게 소중하지만 부정하고 싶을 만큼의 아픔도 준 존재다.

어디선가, "가난하고 못난 가족을 선택한 당신이 잘못했다"라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태어나며 가족을 선택할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장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내가 잘못한 게 참 많구나. 반성해야겠구나. 뭐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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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도 안 되는 말들이 위로가 되는 때가 있다.

받아들이면 내가 편하고, 마음이 편하고, 정신이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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