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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30. 2015

[너를 만난 그곳] #6. 내 어른의 기억

고로 아직 난 어른이 되지 않은지도 모른다

- 1 -


이미 커버린 나에게 어른이 되고 안되고는 선택권이 없다.

아마, 누구라도 마찬가지 일거다. 다만, 어른을 보며 자라 온 사람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터.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돈 벌러 나가시고, 누나는 밖에서 방황하고.

나에게 어른은 없었다. 그저 늘 혼자였다.


- 2 -

 

누군가 말했다.

언젠가 문득,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고픈  그때가 바로 어른이 된 순간이라고.


멋지게, 낭만적으로 포장된 말이 그럴듯하다.

하지만, 난 솔직히 어렸을 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별로 없다.


아련한 추억이 몇 개 있긴 하지만, 보고 자랄 어른이 없던 나에게는 무의미한 기억에 지나지 않았다.

고로 아직 난 어른이 되지 않은지도 모른다.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 3 -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성인'은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만 19세부터다.

'성인'과 '어른'은 다르다.

 

만 19세는 법으로 정한 나이일 뿐, 그 나이를 넘어섰다고 다 어른은 아닐 거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른'은 누구이고, '어른'이 되는 기준은 무엇인가?


술을 마실 수 있고, 섹스를 하거나, 도박을 하거나, 마음대로 초콜릿을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게임을 하거나, 군대를 가거나, 임신을 한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어른을 규정하진 않을 것이다.

'성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일 테니.


- 4 -

 

아무 맛을 못 느끼던 생선회를 언젠가부터 맛있게 먹었던 기억.

쳐다도 보지 않던 마늘을 고기를 먹을 때면 어김없이 찾는 모습.


월급을 받아 내가 사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쓸 때의  그때.

어머니를 차 뒷자리에 모시고 직접 운전을 할 때 느끼는 감정.

더불어, 만날 받기만 하던 용돈을 어머니께 드리게 된 그 시점.


어렴풋이 어른이 된 건 아닐까 느끼는 순간이다.

아니, 어쩌면 어른이 되었다기보다는 예전과 비교해 무언가 많이 달라졌다...라는 생각.


- 5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경제적인 몇 가지를 뺀다면 그리 아쉬울 것이 없었다.


다만, 커보니 알겠더라.

집안에 어른이 없으니,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거니와 스스로 깨닫는다 한들,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물론, 스스로 깨달으려 노력하고 힘겹게 사투했던 그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더 발전하게 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아 맞다. 흙수저는 흙수저일 뿐이고, 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쇠숟가락이라도 되기 위해선 무던한 노력과 커다란 기적이 필요하는 것도 스스로 깨달았지.


- 6 -


변호사 집안에서는 변호사가 나오고, 의사 집안에서는 의사가, 교수 집안에서는 교수가 많이  배출된다.

요즘은 연예인 집안에서 연예인도 많이 나온다.


 어떤 일을 하는 '어른'을 보고 자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다만, 요즘은 비단 이러한 영향뿐 아니라 부익부 빈익빈 논리에 따라 배움의 기회를 더 많이 얻게 됨으로써 그 직업이 대물림되는 경우도 많다. 


불공평한 세상.

어른 없이 혼자 어렵게 자라면 프롤레타리아 성향을 갖기 십상이다.


바로 나처럼.


- 7 -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불만은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요즘은 불공평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3포 세대, 5포 세대, 7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가 충분히  이해된다.

가진 것 없는 것은 둘째 치고, 밑바닥이 아닌 지하부터 시작한 나로서는 그렇다.


사실, 태어나 보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

밥이 없어 굶어 죽을 것 같으면, 빵이나 라면이라도 먹지 그러냐는 말을 할 것이다.

빵이나 라면 살 형편도 안 되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 8 -


더 무서운 것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라는 것을 모른다.

지금보다 더 갖기를 원한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하지만, 난 그것을 어느새부터인가 인정하기로 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자가 된다면 아마 더 가지려고 발버둥을 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난 이미 무엇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 9 -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의 주위를 둘러보면, 소위 말해 부모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자란 사람이 많다.

국회의원, 외교관, 검사, 임원의 자녀들. 대학교는 영문으로 쓰여진 외국 학교를 나와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나와는 정말 다른 사고와 Life style을 가지고 있다.


다만, 회사에서는 나와 거의 평등하고, 다행인 것은 유학을 다녀왔다고 해서 일을 그리 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 10 -


열등감은 잊은지 오래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나름 나에게도 오진 오기가 있고, 약간의 운이 더해져 취업이라는 것을 했고 세상을 겪으며 스스로 깨달은 바가 많다. 


어쩌면 '받아들임'은 나를 위한 최고의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분노는 뒤집어보면 내가 그리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의 표출이므로.


이렇게  이야기하니 내가 꼭 '어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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