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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l 26. 2024

나는 누군가의 삶의 조연임을

<메타버스보다 에고버스>

우연찮게 친구의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았다.

인터넷도, 디지털카메라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의 사진은 무언가 경직되어 보인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긴장이 사진을 넘어 전해질 정도로. 


그런 아날로그의 감성을 느낄 새 조차 없이, 갑자기 내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꽃을 들고 한껏 꼿꼿한 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친구 뒤로, 내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나는 어머니의 부름을 받아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 친구를 중학교 때부터 알았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시엔 모르는 사이였으니 친구의 사진 뒤 내 모습은 아무래도 우리가 멀지 않은 미래에 친구가 될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운명의 어느 한 신호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금도 나는 두 눈 후둥그레진 그날을 가끔 떠올린다.

삶에서 내가 무조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나에겐 무조건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거나 모든 일의 끝은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다가올 때.


친구의 사진 속 나는 분명 '조연'이었다.

'주인공'은 당연히 포즈를 취한 친구였다. 어머니께서 찍어 주신 사진 속에선 내가 주인공이었지만, 친구의 사진 속에서 나는 그저 지나가고 있는 '친구 1'이었던 것이다.


삶이 무대라면, 우리는 모두 배우다.

또는, 삶이 하나의 소설이라면 하루 한 장, 그 챕터를 채워 나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고로, 우리는 배우이자 작가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연기하는, 내가 써 내려가는 소설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꼭 그러해야 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면, 그건 내 삶이 아니니까.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누군가의 조연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 삶에서도 주인공일 수 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며, 영화나 드라마 속엔 주인공보다 더 많은 조연과 스탭이 있다는 걸 알아차려야 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인해, 작품은 만들어진다. 주인공 한 명만 있다고 해서 이야기는 전개되지 않는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홀로 무대를 채우거나, 홀로 소설의 전부를 완성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면서 '조연'이다.

'조연'이면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야 삶의 장면 장면은 이어져 나아간다.


홀로 계속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생각.

주인공에겐 항상 좋은 일이나, 그 끝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건 큰 오만이다. 숨이 멎을 때까지, 우리네 작품은 끝나지 않는다. 고로 '엔딩'은 없고, 매회 연속이 되어야 하는 몇 부작인지, 몇 챕터인지 모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때론, 과감히 누군가의 조연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 더 많은 걸 얻는 경우가 많다.


친구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에서 발견된 내가.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지만, 또한 누군가의 삶에 조연임을 잊지 말라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세세히,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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