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는 물론 있다. 예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꾸준히 둘 중 하나 또는 그 둘을 병행하는 사람들이다.
오랜만에 책을 집어 들었다.
글은 계속하여 써오던 터였다. Inut 없는 Output은 없으며, 원인 없는 결과도 없다. 글을 써내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더 많은 걸 표현하고 내어 놓고 싶었다. Input이 필요한 시간. 책을 집어든 이유다.
한 문장, 한 문장.
더디다. 집중하기에 쉽지 않다. 그냥 짧은 동영상이나 볼까...라는 유혹이 짧지 않게 느껴진다. 5분이면 된다. 5분만 지나면 독서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집중력이 생긴다. 그 5분을 참지 못해, 우리는 책을 멀리하고 짧은 동영상에 쉬이 넘어가는 것이다.
새롭게 맞이하는 문장들이 반갑다.
독서의 큰 묘미는 '확장성'에 있다. 어느 문장을 읽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문장에서 더 나아간 아이디어의 승화다. 글감이 떠오른다. 글감을 적는다. 그리곤 다시 읽어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애매하던 개념이 확실해지고 지식이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언어는 생각의 감옥이라 했던가. 감옥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감옥의 크기를 넓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좁은 감옥에서, 짧은 동영상에 심취하여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으니까.
독서를 마친다.
글감이 수북하다. 한 문장에서 여러 영감과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기도 한다. 나는 이걸 쓴다. 독서를 하며 얻은 것이 '생각의 확장'이라면, 글쓰기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생각의 사유화'다. 생각은 휘발한다. 잠시 떠오른 아이디어는 영원할 것 같지만, 3초 뒤면 사라진다. 머리를 감다가도 글감이 떠오르면, 급하게 메모를 하는 이유다.
독서와 글쓰기 = 사유와 사유화
독서로 생각을 확장한다.
확장한 생각을 글쓰기로 담아 내 것으로 만든다.
마법사가 큰 항아리에 이런저런 약재를 넣어, 마침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마법을 행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글쓰기라는 항아리에 내 모든 감정과 생각, 지식과 경험을 담는다면 나만의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마법의 주문을 알고 있어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생각하는 게 쉬워 보이지만, 요즘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결제창과 소비로 이끌기 위해, 세상은 우리를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생각하더라도 그것이 휘발되는 대로 놔둔다. 쓰지 않는 것이 이의 방증이다.
활자 중독일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지인이 있다.
그런데 삶의 변화는 없다. 변화 없는 삶을 한탄한다. 독서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왜일까? 둘 중 하나다.
사유하지 않았거나.
사유화하지 않았거나.
다시 말하지만, 독서는 생각을 위한 고귀한 시간이다.
활자만 읽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색해야 하고, 내 경험을 떠올려 생각을 확장해야 한다. 또 하나, 그것을 사유화해야 한다.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이 또한 아무런 소용이 없다. 써야 한다. 확장된 생각을 써먹어야 한다.
사유하고 사유화하는 건, 독서와 글쓰기의 관계와 같다.
이것이 선순환을 만든다. 마법의 항아리에서 나만의 마법이 잘 섞이는 과정이자 순간이다.
독서와 글쓰기를 동시에 하기 어렵다면.
둘 중 하나만이라도 꾸준히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읽으면 쓰게 되어 있고, 쓰면 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요성을 알면, 다른 것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휘발되는 생각을 붙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쓰게 되고, 더 꾸준히 쓰기 위해 읽게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마법이 필요하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말이다. 각자의 마법이 난무하는 경쟁 사회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