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보다 에고버스>
누군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누가 만든 고약한 메커니즘인지 모르겠다.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데, 괜스레 요동하는 마음은 대부분 열등감에서 온다.
사람만큼이나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동물이 없다. 시기와 질투, 미움과 증오의 대부분은 열등감으로부터 온다.
내 마음의 열등감을 들여다본다.
과연, 타인을 향한 시선에서 그것은 비롯된다.
시선은 비교로 변질된다.
자아보다 큰 타인. 타인보다 못난 자아.
분노와 증오가 발생한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걸 저 사람은 왜 가지고 있는가.
내가 이루지 못하는 걸 저 사람은 왜 이루고 있는가.
내가 향유하지 못하는 걸 왜 저 사람은 누리고 있는가.
한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감정들이 스스로를 옭아맨다.
자, 이제 결단의 시간이다.
열등함을 거부하며 분노할 것인가.
열등감을 인정하고 성장할 것인가.
인류의 발전은 열등감을 극복해 온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이라고 다를까. 내 자아 또한 그렇다. 못남을 인정하고 성장의 에너지로 삼는 게 남는 장사라는 걸 알아냈다.
열등감에 대한 분노는 내 자아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쪼그라든 자아를 펴내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던 경험을 떠올려보면, 남는 장사로 생각을 바꾸는 게 낫다.
열등감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반대로, 쉽지 않은 선택을 하면 한 뼘 더 자랄 수 있다. 회피가 아니라 생각을 하면 된다. '해석이라는 생각'. 회피하면 분노만 남지만, 왜 열등감이 생겼는지 이것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다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부족하면 채우면 되는 것이고.
채워지지 않은 건 앙망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랄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고, 어쩔 수 없는 건 잘 포기하게 된다.
오늘도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는, 팔 할이 열등감임을 알아챈다.
자아를 해부하는 건 그리 쓸모없는 일이 아님을, 나는 다시 한번 더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