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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11. 2024

멕시코만의 똘레랑스 (1)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은 제한하지 않는다.

'똘레랑스(프랑스어: tolérance)'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는 'Tolerance (톨러런스)'라 말한다.
어느 사회나 통용되고 용인되는 '관용'이 있다.
멕시코에서 받아들여지는 똘레랑스에 대해 알아본다.


음악의 볼륨은 제한하지 않는다.
설령 그 순간이 새벽 3시 일지라도.


멕시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앗아가면 가장 괴로울지를 생각해 보면, 단연코 '따꼬'가 생각날 것이다.

또한,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면 괴로울까. 춤이다. 마지막으로 무엇을 금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까. 바로, '음악'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음악은, 열정과 영혼이 담긴 소리의 향연이다.

그래서일까. 멕시코엔 음악과 관련한 '관용'이 서로의 습관에 배어 있다.


가전과 전자 제품을 파는 매장에 가보자.

그리고 스피커 코너에 가보자.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스피커의 모양은 손바닥만 한 것이거나, 커봤자 사운드바와 같은 TV와 연결되는 스피커와 우퍼가 전부일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는 차원이 다르다. 아래 사진과 같이 행사용으로 쓰는 스피커가 즐비하다. 심지어, 멕시코 가정엔 이와 같은 스피커가 여럿 있다. 행사용이 아니라, 가정용이란 뜻이다.


한 번은 멕시코 친구 집에 간 적이 있다.

낮이었지만,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로 집안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친구 집은 다가구 주택으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구조였다.

"이렇게 음악을 크게 틀어도 괜찮아?"
"No hay problema! (문제없어)"

한국이었다면, 경찰이 출동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밤에도 이것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파티(Fiesta)가 있다면, 새벽 시간까지도 음악은 용인된다.


아래 영상은, 실제로 멕시코 '죽음의 날'에 대되어 갔던 피에스타였다.

놀랍게도, 밴드가 자리 잡은 곳은 일반 가정집이다. 파티는 새벽 5시에야 끝이 났다. 정제되지 않은 밴드의 음악과, 메탈에 가까운 보컬의 목을 긁는 소리가 새벽까지도 울려 퍼졌다.


그러나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음악을 멈추라는 항의도 전혀 없었다.

일반 가정집을 콘서트장으로 만든 밴드...


음악은 멕시코의 관용을 제대로 보여주는 문화다.

기쁜 일이 있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듣고 싶다면 음악은 시간과 볼륨을 가리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똘레랑스가 통하지 않는 곳도 분명 있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우엔 음악 소리는 밤 9시 이전이면 끝이 난다. 아무래도 외국인은 멕시코의 정서를 100%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에.


이러한 관용은 왜 생겨날 것인가.

추측컨대, 음악 없인 살 수 없는 그네들의 정서를 서로가 공감하는 것에서, 또한 나도 언젠간 피에스타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 똘레랑스는 서로에게 용인되는 것 아닐까.


문제없다는 친구의 말에,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한국인의 (경찰이 오거나, 누가 신고하면 어떡하지... 란) 불안함은 잠시 뒤로하고,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유(?)와 관용을 만끽한 그날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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