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가장 쉽게 살아가는 존재
자괴감,
너는 참 좋겠다.
삶을 아주 거저먹는구나.
너만큼 세상을 쉽게 사는 존재가
또 있을까.
너는,
내가 행하지 않는 것들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파고들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존재.
후회를 하게 하고
자책은 덤이요
우울은 선물이로다.
내가 너를 키워 온 건지
아니면, 네가 나에게 기생하는 건지.
분명한 건
너를 먹이는 것,
네가 먹고 있는 것은
나에게서 온 것임이 맞네.
만연하고 만연하구나.
네가 먹을 것들.
나의 의지 부족을,
나의 귀찮음을,
내일로 미룬 모든 것들을
너는 먹고 사니까.
더욱이나
새해가 되거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그때,
바로 그때가
그 부스러기가 가장 많은 순간이지.
허겁지겁 먹을 이유도 없이
너는 그 부스러기들을
유유히 쓸어 담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너는 어느새
눈꼬리도 올라가지.
당최,
입만 웃는 일은 없는 너니까.
신은,
나에게 삶을 거저먹지 않도록
너란 존재를 하사 했나 보다.
그래,
난 너를 이길 수 없다.
인간으로서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
무궁무진할 테니까.
그리고 그 무궁무진 함속에서
허덕이며 인생을 살아가고
그 모든 것들은
나를 탓할 테니까.
그러니,
난 너를 이기지 않겠다.
하지만,
이기지 않는다는 것이
패배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게 중요하다.
너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나 이므로,
나는 너와 함께 가겠다.
괴로움이 지나간
그곳에
바로 거기에
나는 나를 다시 쌓겠다.
다시,
잊지 마라.
너를 먹여 살리는 건,
바로 나다.
같이 가자.
자괴감이 들 때,
난 또 다른 시작이라 믿겠다.
거저먹는 삶을 네가 누릴 때,
난 다시 시작하겠다.
이것이,
너를 이길 필요도 없고,
너에게 질 필요도 없는 이유다.
그냥,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바로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