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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술을 먹듯, 글이 글을 쓴다.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술이 술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직장에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할 때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분명 술을 싫어하는데, 기분이 좋아지며 감당하지도 못한 양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이밖에도, 술과 함께 눈빛이 돌변하는 어느 동료의 모습을 보며, 술이 술을 먹는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평소 차분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도 잘하지 못하던 사람이, 어느 정도의 주량을 초과 하자 쌍욕을 하며 과격해진 것이다. 나는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술에 지배되어 초점을 잃은 그 두 눈을.


술이 술을 먹기 시작하면 자아는 사라진다.

술에 지배되어 주체성을 잃는다. 그래서 무섭다. 어떠한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억하지도 못할 일이 벌어지면, 삶의 큰 오점이 되거나 후회와 아쉬움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하지만 상반되는 일도 있다.

바로 글이 글을 쓰는 느낌이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다. 간혹 내가 쓴 글이나, 책 속 문장을 보면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료를 찾기 위해 글을 검색하던 중, 읽다 보니 내 글이었던 적도 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글을 많이 써서? 출판을 많이 해서?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절대적인 사유는 아니다.


나는 그 당시, 진심과 전념을 다해 글을 썼지만 그와 더불어 글이 글을 써준 것도 있으리란 생각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끄집어내어 준 것이다. 이는 술이 술을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술이 술을 먹으면 자아는 옅어지지만, 글이 글을 쓴다는 건 자아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켜 줌을 의미한다. 문장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 의미는 여전하다. 그 문장을 붙잡고 깨닫고, 살아왔기에.


간혹, 출간된 여러 책을 보면 이걸 다시 쓸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책들이 나의 노력으로만 나온 것이 아니고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의 도움으로 탄생된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그땐 어떻게 그리 많은 이야기를 꺼내어 놓았을까를 다시금 떠올린다.


오늘 써내는 글 하나하나가, 앞날의 어느 날 돌아보면 또 그렇게 느낄지 모른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시간이 지나 이 글을 다시 보게 될 나 자신은 어떻게든 변해 있을 존재다. 다시는 똑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듯, 자아는 흐르는 강물처럼 변한다.


글이 글을 쓴다고 느끼는 건, 미래의 내가 바라보는 과거의 나이기 때문이다.

오늘과 내일, 지금과 미래에서 오는 간극이 내가 쓴 것이 아니라 글이 글을 썼다고 느끼겠지만, 결국 그 글을 쓴 건 '나'인 것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을 다시금 잊지 않고, 초심을 떠올리며 실천하면 된다.


글이 글을 쓰도록 허하자.

그러하면,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아의 확장은, 늘 언제나 즐거운 삶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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