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 지금은 글쓰기뿐

<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by 스테르담

혈기왕성할 때의 에너지는 외부를 향한다.

'혈기왕성'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것이 '넘치는 것'아닌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혈기가 왕성하다는 건, 어떻게든 그 에너지를 밖으로 뿜어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에너지가 외부로 발산하면, 자연스레 시야와 관점도 밖을 향한다.


젊을 때 최고의 가치는 '즐거움'이다.

유흥일 수도 있고, 쾌락일 수도 있고, 본능에 충실한 여러 무엇들일 것이다. '경험'이라는 가치와 맞물려, 세상은 두렵기도 하지만 이것저것을 해볼 수 있는 놀이터와도 같다. 다만, 젊을 땐 젊음을 모르듯 당시엔 그러한 자유와 즐거움을 잘 알지 못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늘 함께 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갓 지나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깊이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시야가 밖으로 향하고 있으니, 자신을 돌아볼 여지와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나이가 들면 에너지는 넘쳐나지 않는다.

넘쳐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만큼은 아니다. 먹고사니즘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고도의 가치를 사수하느라, 오늘도 세상과 씨름을 한 자들은 고단하다. 에너지를 사용하기보단 오히려 아껴야 한다. 고로, 그 방향은 내부로 향한다. 호르몬의 변화도 한몫한다. 혈기왕성함은 잔잔해지고, 눈물이 없던 자에게도 눈물이 찾아온다. 무엇을 위해 이리 열심히 뛰어왔나를 돌아보니, 남는 건 허무함 뿐이다.


에너지를 넘치지 않게 잘 다스리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허무함'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원동력이다. 허탈함과 공허함이 몰려올 때, 사람들은 삶의 속도를 줄인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돌아본다. 진작 이러했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허무함은 그런 것이다.


허무함의 상태에 그대로 머물러 있어선 안된다.

그렇다고 뭐라도 해야 한다고 하여, 이것저것 하면 그것도 안된다. 중요한 건 '자신', '자아'다. 무엇을 하더라도 자아를 향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찾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 일지를. 젊었을 때처럼 유흥과 쾌락을 좇는 사람들도 있다. 뭐라 하진 않겠다. 모두 각자의 삶의 방향이 있을 테니.


다만,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건 '글쓰기'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다가가는 길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 길목엔 여러 유혹도 허다하다. 짧은 동영상, 유흥과 쾌락, 도파민을 끌어올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것. 이것들은 피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갖가지 유혹에 혹하지 않을 순 없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는 기어이 '나'를 '나'에게 안내한다.

세상의 풍파와 유혹에 시달려 허무함이 몰려올 때, 나는 그저 쓴다. 차분히 앉아 쓰기도 하고,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쓴다. 쓰는 이유는 숨 쉬기 위해서다. 나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생각보다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하다. 더 많은 산소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뛰어야 한다.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한다. 글쓰기는 쉽지 않은 선택이자 활동이다.


나는 아직까지, '글쓰기'만큼 나에게 나를 잘 안내해 주는 수단을 찾지 못했다.

반대로 말하면, 글쓰기는 나에게 회귀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것이다.


허무할 때 찾아온 글쓰기라는 선물.

글을 쓰며 허무함의 실체를 밝히는 삶의 선순환.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지금이, 나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오늘이 나는 참 좋다.




[종합 정보]

[신간 안내] '오늘도 출근하는 나에게'

[신간 안내] '아들아, 나는 너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신간 안내]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


[소통채널]

스테르담 인물검색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말하듯이 쓰고 쓰듯이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