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표 101가지 삶의 지혜>
운전을 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경쟁과 비교에 휘말리게 된다.
내가 있는 차선은 슬금슬금 가는데, 옆 차는 언제나 나보다 빠르다. 그렇다고 차선을 바꾸면, 또 내 차선이 더 느리게 되어 오히려 내가 있던 곳의 옆 차가 또 나를 앞질러 간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는 언제나 남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비교'는 좋지 않은 것이라 말하는데, 아빠는 생각이 다르다. '비교'는 '생존'을 위한 아주 좋은 수단이자 자기 방어 기제다. 비교를 통해, 우리는 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어려움이나 위험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다. 남들이 (공통적으로) 움직이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으며, 그러한 트렌드를 잡아내어 알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비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집단주의'라는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고,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품앗이와 같은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생활을 했어야 했다.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정도였고, 이웃을 사촌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 보니, 튀는 것보단 함께 비슷비슷하게 살아야 했다.
재밌는 건, '비교'는 비슷비슷한 무언가가 있을 때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아예 다른 건 비교할 필요가 없다. 비슷하니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네 사회가 '비교'에 중독되어 있는 이유다. 이러한 문화적 바탕을 가진 우리에게, SNS라는 것이 생겼으니 말 다했다. '비교중독'은 앞으로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비교는 어찌할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아빠가 너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비교의 대상'이다. 남들과의 비교는 '벤치마크(Bench Mark)' 수준에서 멈춰라. 그것에 만족해라. 그들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한 허탈함을 느끼지 말고,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가졌으며 그것을 가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라. 거기까지다. 딱 거기까지.
너희가 정말로 비교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과거의 자신'이다.
'남과의 비교'는 '탓'만 유발한다. 그러나, '자신과의 비교'는 '성장'을 양산한다.
자신과 싸우라는 뜻이 아니다.
어제의 자신을 직시하고, 이해하고, 보듬어 '오늘의 나'를 인식하라는 것이다. '어제의 나'를 이해하고, '오늘의 나'를 제대로 인식해야 '미래의 나'를 제대로 만들어갈 수가 있다. '자아의 통합'이다. 시공간을 초월한 자아의 통합은, 살아가는 데 있어 꽤 큰 힘이 된다. 비교의 기준이 '남'이 되면, 자아의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스스로 뛰어나야 한다.
그 누가, 너희보다 너희에게 뛰어나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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