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좇는 것도, 쫓는 것도 아니다.

<스테르담 행복론>

by 스테르담

때로, '좇다'와 '쫓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헷갈린다.


'좇다'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가치 있게 여겨 추구하다.
그대로 따르다.
계속 주시하여 눈여겨 살피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Follow'다.

SNS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앙망하여 따르는 것을 말한다.


'쫓다'의 의미도 보자.

있는 자리에서 떠나도록 몰아내다.
더 생기지 않도록 물리치다.
잡기 위해 빠른 속도로 뒤를 따르다.


'좇다'와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누군가를 쫓아낸다는 뜻도 있지만, (잡기 위해) 뒤를 따르다란 뜻도 있다. Follow와는 의미가 다르다. 말 그대로 형사가 범인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행복은 '좇는 것'일까, '쫓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좇다'에 행복은 더 가까워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행복을 '쫓는 것'이다.


말 그대로다.

의미 그대로다.


있는 행복을 쫓아내거나, 추구하여 좇는 게 아니라 범인 쫓듯 그것을 따라간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뒤에서 쫓으면 어떨까. 우선 도망치고 볼 것이다. 우리가 행복을 쫓는다면, 행복도 그러하지 않을까.


일상에서의 감사함과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건, 있는 자리에 있는 행복을 쫓아내는 것과 같다.

너무나도 강하게 행복을 쫓아가면, 행복은 더 멀리 도망갈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을 '좇아'야 하는가?

그것도 아닌 듯하다. '행복'을 좇으면 남는 게 무얼까. 가치 있게 추구한다 하여 행복이 나에게 올까? 그대로 따르거나 눈여겨 살펴본다고 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남의 행복'을 따르고, 살피게 되는 건 아닐까?


행복을 마주하며 느끼고 깨달은 건 다음과 같다.


행복은 좇는 것도, 쫓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복도 능력이다.

행복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하다는 것이, 마냥 기분 좋고 웃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행복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때로, 행복은 길거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지폐와도 같다.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건 우리의 각박함이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볼 게 있다. 그 지폐를 잃어버린 자에게,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돈을 주워 자신이 쓰는 것과 돈을 주워 주인을 찾아주는 것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겐 더 행복한가. 어느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행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과, 행복에 겨워 돈을 쓰고 나중에 마음 불편해하는 것과 당장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국 마음이 편해지는 것의 차이를 명징하게 구분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의 기준점이 아닐까.


때로, 우리는 울어도 행복함을 느끼고.

때로, 우리는 웃어도 불행함을 느낀다.


좇지도 말고.

쫓지도 말자.


행복은, 마주하는 것이고.

마주했다면 잘 받아들이면 된다.


잘 받아들이면.

행복을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행복을 마주하고, 잘 받아들일 기회를 높이려면?

그것을 찾아다니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길은 더 어긋날 것이다.


제 자리에서.

맡은 바의 삶을, 소명을, 책임을 다하고 있으면 오가는 행복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게 된다.


이전보다는 훨씬, 행복과 덜 어긋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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