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도 않으면서 힐링부터 찾는 이유

<스테르담 행복론>

by 스테르담

간혹 뜨끈한 국물을 먹으면, 술을 먹지도 않았는데 해장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말 그대로 '느낌'이다. 따뜻하고 칼칼한 국물이, 한국인이라는 몸과 마음의 정서를 다독여 주는 것이다. 아프지 않아도 힐링받을 수 있다는 말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유도 모른 채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아픔일 수 있다.

반복되는 날들과 불확실한 미래로 하루하루라는 일상이 벅찬 이유다. 이 모든 것 또한 '느낌'에 기인한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달래려면, 그 기분을 환기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소비'다.


한 사람의 뇌 앞쪽에서 고주파 베타파가 나온다.

심장 박동은 분당 120회로 급격히 증가한다. 교감신경이 각성되고, 그 정도는 복권이나 마약을 흡입했을 때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증상이다. 이 반응은 피실험자의 머리에 센서를 장착하고, 구두 상점에서 대폭 할인된 한 브랜드의 구두 정보를 주었을 때 일어난 것이다.


원인이 아닌 방법부터 찾는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빨리 기분을 전환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전환의 속도를 빠르게 바꿀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뇌 속의 호르몬이며, 소비를 통해 즉각적이고도 강한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힐링'이라 말하는 것이다.


'힐링'이란 말을 검색어에 넣어 보면.

힐링의 의미와 본질적인 해결 방법 보단, '판매'와 '소비'가 주를 이룬다. 여행 상품이나, 삶의 방식을 바꿔준다는 제품이 한가득이다.


이것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

'힐링'은 (기업이나 판매자 입장에서)'돈'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들이 진정한 힐링을 가져다줄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줄까?


원인을 모르고 힐링만을 찾는다는 생각이 들 땐,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는 걸 우선 깨달아야 한다. 내 상처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소비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명을 모르고 처방하는 약은 위험하고, 그것은 몸은 물론 영혼의 아픔까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하더라도 알고 소비해야 하고, 약을 먹더라도 어디에 좋은 지를 알고 먹어야 한다.


누군가가 여행한 그곳에서 힐링을 얻었다고 해서, 내가 그곳에 가면 힐링이 될까?

누군가가 먹은 맛집에서 나는 힐링을 얻을 수 있고, 누군가가 지른 물건으로 나는 치유될 수 있을까?


그러할 수도 있고, 그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가진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내 아픔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지라도.


'병명'은 없는데, '처방'만 가득한 시대.

'상처'는 모르겠고, '힐링'만 양산하는 시대.


'나는 힘드니까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겠어?'란 말은 편향적 자기 합리화다.

열심히 일을 했든 안 했든, 내가 어디가 아프고 어떤 마음의 상처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저 떠나는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진정한 '힐링'의 의미를 떠올릴 때다.

그 의미는 또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겨야 한다.


소비는 소비를 낳고.

소비를 부추긴 호르몬이 게눈 감추듯 사라지면, 허무함이 남을 뿐이다.


나를 채울 수 있는 소비.

무언가를 다시 생산해 낼 수 있는 소비.

진정으로 내 몸과 마음을 충전하고 다스려주는 소비.


진정한 행복은 힐링을 가져다준다.

나를 이해한 제대로 된 힐링은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 가운데, 그 중심에, 그 주체에 바로 '자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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