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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음 신호에서 만날 거면서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by 스테르담

그날따라 심보가 고약했다.

내가 봐도 그랬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은 그랬다. 운전대에 올랐다.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앞을 가로막거나, 옆에서 끼어드는 차를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원인 모를 그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 드려는 차가 나타났다.

그렇지. 이거지. 방향 지시등을 켜도 양보를 해주려 하지 않았는데, 방향 지시등을 켜지도 않았으니 내겐 세상 정의로운 권한이 주어진 거였다. 경적을 울렸다. 평소보다 길게. 그리고 액셀을 밟아 틈을 주지 않았다. 경적만 울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더라면, 그 차는 내 앞으로 기어이 들어왔을 것이다. 멀어지는 그 차를 뒤로하며, 무언가 정의를 구현했다는 만족감에 속도를 높였다. 그래, 너는 늦게 와도 싸다.


그런데, 결국 다음 신호에서 우리는 만났다.

그 차가 내 바로 옆에 섰다. 서로 의식하지 않으려, 서로를 보지 않으려는 눈치가 이상하게도 전해졌다. 느낌적인 느낌, 분위기적인 분위기...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굳이 나를 끼워주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차는 저 앞으로 멀리 달려 나갔고, 나는 그저 내 속도에 맞추어 운전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다음 신호에서 만났다. RPM을 올려가며 그렇게 빠르게 치고 나갔던 차였는데.


살다 보면, 이러한 때가 있다.

누군가를 앞서 갔다는 통쾌함과, 또 누군가에 뒤처졌다는 패배감. 이 둘은 삶의 전반을 오가며 희열과 슬픔을 가져다주는데, 돌아보면 무엇이 희열이고 무엇이 슬픔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고, 지금은 맞는데 그때는 틀리고. 빨리 가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또 아닐 때도 있고. 느린 게 좋을 때도, 그러하지 않은 때도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느 한 지점의 신호에서 만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신호를 받지 않고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신호에서 만나고.


종내에는, 죽음이라는 신호에서 어차피 우리는 멈춰 서야 하지 않는가.

목적지는 달라도, 종점은 같다.


어차피 종점에 이를 거라면, 급하고 과격하게 운전해서 남는 건 뭘까.

어차피 죽음에 이를 거라면, 여유 없이 허겁지겁 살면서 남는 건 뭘까.


오늘은 어쩐지, 자주 걸리는 신호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글 하나를 또 써냈으니.


여유 없는 삶의 중간에서.

삶의 전반을 돌아보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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