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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 변경의 미학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by 스테르담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건 바로 '차선 변경'이었다.

(당시에 수동 변속기로 면허를 딴 터라) 클러치와 엑셀러레이터의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해 시동을 꺼먹거나, 주차를 해야 할 때 우물쭈물하는 건 조금은 더 혼자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차선 변경은 그러하지가 않았다. 초보에게 있어, 그것은 사고의 위험이 가장 큰 아주 고난도의 도전이었다.


게다가 차선 변경을 위해 방향 지시등을 켜면, 더 빨리 달려오는 뒤차들의 무자비함은 공도에서 느끼는 공포였다.

그러나 어쩌랴. 차선 변경을 하지 못하면 직진만 해야 하는데 집을 나서 돌아오지 못하거나, 멈추지 못하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야 할 수도 있다.


처음 차선 변경을 할 때, 가장 큰 실수를 한 건 바로 브레이크를 잡는 것이었다.

옆 차선으로 차를 움직이려면, 도로의 흐름을 봐야 한다. 즉, 정지하여 차선을 변경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속도를 내어 흐름보다 조금은 더 빨리 끼어들어야 한다. 처음엔 그것을 몰랐다. 안전(?)을 위해 속도를 줄이거나, 잠시 멈춰 차선을 바꿔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사고의 위험을 높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것을, 삶에 빗대어 볼까.

살다 보면 우리는 삶의 차선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하다못해 좁은 인도를 걸어갈 때도 그렇다. 천천히 진로를 바꾸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 오히려 속도를 내어, 빈 공간을 파고들어야 한다. 삶의 방향, 의견, 생각 등을 달리할 때 우리는 타인과의 갈등을 겪기 십상이다. 또는 누군가의 길을 막기도 해야 하고, 양보도 해야 한다.


잊지 않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생각은 자동차든, 우리든, 삶이든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하니 차선을 바꾸려면 속도를 더 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차선 변경은 미학이다.

내 위치를 알아야 하고, 내 속도를 알아야 하고, 옆 차의 움직임을 알아야 하고, 옆 공간의 여유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은 단 몇 초 만에 이루어지는 거대한 결정이자 실행이다.


이러한 미학을 인생에도 적용시켜야 한다.

나를 아는 것. 내가 가고 있는 삶의 속도를 인지하는 것. 타인의 상황을 파악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그곳에 다다르는 것.


간혹,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불쑥 들어오는 차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러한 실수(?)를 할 때가 있다.


이러한 행동은 미학과 거리가 멀다.

'미학'은 너와 나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일이 없을 때 성립된다.


빨리, 무리하게 가 아니라.

안전하고 서로가 기분 좋게 차선 변경하는 것.


운전대든.

삶의 한가운데에서든.


이것은 우리가 잊지 않고 지켜야 할, 미학 중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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