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랜드로'에서 '너나랜드로'의 곤두박질
현실과의 안녕은 뮤지컬 영화의 소명이다.
그것도 다른 장르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음악과, 주인공이 아닌 사람들의 춤사위에 대한 생뚱맞음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음악이 끝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가는 등장인물들을 보면, 손발을 뛰어넘어 온 몸이 오그라들 정도다. 장단점은 있다. 현실과 안녕을 고하는 그 급행열차에 잘 올라타면 '몰입'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그 열차를 놓치면 영화 보는 내내 신체의 일부가 오그라들고, 앉은자리는 영 불편하게 된다.
시궁창과도 같은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찾으라고 영화는 말하고 음악과 춤으로 부추긴다. 여느 다른 뮤지컬 영화도 그래 왔다. 어쩌면 프레임 전환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아름다움을 기껏 설명하려는 수고 대신 택한 장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분고분해 왔다.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을 멜로디를 담은 대사와 춤이, 그래도 우리 삶을 조금은 더 아름답게 포장했다는 위안을 받아서일까. 역설적으로 보면, 그만큼 우리의 삶이 쓰디쓰다는 것인데도.
계절 그리고 인생. 또 사랑.
겨울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계절의 그것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겨울이라고 외투가 나오거나 여름이라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없는 것을 보면, 감독의 의도는 과연 명확하다. 계절을 계절로 보지 말라는,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절의 굴곡은, 우리가 잘 아는 인생의 굴곡과 잘 맞아떨어진다. 힘겨운 겨울을 지나, 서로를 알아가는 봄. 그리고 사랑의 절정, 찬란한 여름까지. 다른 계절의 자막보다 마음에 더욱더 '쿵'하고 떨어진 'Fall'이라는 자막. 두 커플의 사랑이 이와 같을 거라는, 계절 그대로의 뜻이 아닌 다른 것을 분명히 연상시킨다. 그리고 또다시 맞이한 겨울은 서로에게 참담하다.
전혀 달콤하지 않은 쌉싸름한 이야기.
입소문과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한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낭만'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일련의 장면들이 등장하고 지나간다. 설렘의 정도가 넘쳐, 결국 관객에게 전가된다. 4D가 아닌 5D, 6D를 보는 것처럼, 우리는, 관객은 그 낭만과 설렘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 달콤함의 정도가 컸던 사람이라면 후에 남는 쌉싸름한 맛이 더 크다. 어쩌면 마지막의 쓰디쓴 맛의 정도를 더하기 위해 앞에서 그리 달콤한 사탕을 뿌려댔는지도 모른다. 라라랜드는 달콤하게 보다가, 그 달콤함을 잊고 맞이하는 쌉싸름의 이야기다. 아무리 달콤한 맛이라도 약은 결국 약인 걸까. 아무리 몰입해도 결국 우리는 현실에 있는 것처럼. 참 쓰다. 인생이. 현실이.
라라랜드에서 너나랜드로.
두 주인공이 우주를 넘나들며 사랑을 향유하는 장면은, 곤두박질의 충격을 더한다. 현실로의 그것 말이다. 상대방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나에게 소홀해졌다는 그것이, 서로를 미치게 한다. '미아'의 그것이 그렇다. 먹고살 것을 걱정하면서, 현실과 타협하며 성공한 그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애원. 정통 재즈가 아닌 다른 음악을 하는 것이 행복하냐며 남자의 가슴을 후벼 파고 만다. 자신의 실패에 초라해진 '미아'는 떠나버리고, 우직하고 바보 같은 남자는 끝까지 그녀를 챙겨 오디션을 보게 만든다. 당신을 언제까지나 사랑할 거라고 말한 '미아'의 미래는, 성공과 함께 다른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스타로 그려진다. 자신의 성공에 마냥 행복한 '미아'이고, 영원히 사랑하겠다던 그 남자를 버린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이다. 이에 비해 남자는 미련하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연주해주는 음악에, 내가 내 꿈을 포기하고 너에게 다 맞추었더라면 우린 잘 되었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녹아낸다. 그것을 알아들은 '미아'는 엷은 미소를 띨 뿐. 그렇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는다. 꿈과 낭만의 '라라랜드'는 결국 소스라치게 현실적인 '너나랜드'로 변한다. 각자도생. 각자의 행복을 따라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존재의 우리. '사랑'이라는 것으로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송곳처럼 드러나는 현실의 뾰족함은 그래서 자꾸만 더 많은 뮤지컬 영화를 양산해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 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내가 떠나온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무엇이 그리 만들었을까. 그렇게 떠나버린 '미아'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렸을까. 바보 같은 남자 주인공 '세바스찬'을 보며 지나간 내 모습을 한탄했을까. 결국 '운명'이란 굴레 속에, '인연'이 아니라는 것으로 덮어버릴 이 고민의 끝은, 다시 현실로 잊힐 것이다. 낭만과 설렘을 기대하며 만난 '라라랜드'의 끝은, 그래서 달갑지 않다. 쌉싸름하다 못해 쓰디쓰고, 쓰디쓰다 못해 떫다. 너만이라도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물론, 누군가는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여자 주인공보다는, 남자 주인공에 좀 더 몰입이 된 나로서는, 죽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질 못하겠다.
영원히, 그리고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뮤지컬의 낭만에서, 현실로의 곤두박질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그것이 바로 '너나랜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