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아>
행복했던 순간 불안이 엄습했던 걸 느낀 적이 있다.
왜일까. 왜 나는 행복을 만끽하지 못할까. 고작 몇 분, 몇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지금 느끼고 있는 이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나를 보며 적잖이 놀랐다.
반대로, 절망의 순간에 이르러 마침내 희망이 스며드는 것을 목도하기도 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고 꽤 많은 일들이 내가 걱정한 것보다는 더 작게 마무리되곤 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행복하란 것인가 말란 것인가.
근원적인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없던 질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왜 태어났는지, 어디로 가는지. 죽음이라는 사형 선고를 이미 받아 놓은 존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묻고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꽤 심오하거나 복잡 다난하게 접근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내 감정에 충실하게. 내 생각에 가깝게. 하나 둘, 써 나아가다 보면 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때의 감정.
그날의 심리.
나를 이루는 팔 할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속을 꺼내어 보이는 게,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보다 더 부끄러울지 모른다.
그러나, 쪽팔림보다 더 시급한 건.
나라는 존재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다.
묻고, 생각하고, 느끼고 쓰는 것만큼.
나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지갑을 한번 더 열라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생각을 대신해주겠다는 시대.
이제는 내 마음과 감정에 조금, 아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